books

「변신」- 프란츠 카프카

2542FF43577CE00B142020-05-16 Toa Payoh, Singapore #3

‘직업이야말로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유일한 존재 형식이라는 것, 이러한 부조리를 깨달은 그레고르는 벌레로 화한 것이고 결국 말살되고 마는 것이다.’ – 옮긴이 이덕형

프라하의 노동 보험 공단, 즉 관청에서 처음으로 사회 생활을 시작한 프란츠 카프카는 온 종일 사무실에 앉아 문서나 끄적이며 일하는 공무원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보험국 직원이라는 자신의 직업 뿐 아니라 그렇게 앉아서 일하는 ‘지적 노동’에 대한 반감이었다. 카프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적 노동은 인간을 인간의 공동 사회에서 이탈시킵니다. 그와 반대로 수공업은 인간을 인간에게로 환원시킵니다.” 카프카의 작품들은 모두 난해하면서도 허무한, 독자의 입장으로서는 꽤나 불쾌한 결말로 마무리된다. ⌈변신⌋에서 벌레로 변한 주인공 그레고르, 단편 ⌈유형지에서⌋의 장교, 단편 ⌈단식 광대⌋의 단식 광대, 단편 ⌈시골 의사⌋에서 시골 의사, 단편 ⌈판결⌋에서 게오르크, 그리고 전에 포스팅한 ⌈심판⌋에서의 주인공 K는 한결 같이 소설 마지막 부분에 죽는다. 특히 위 사진에서와 같이 ‘문예출판사’에서 출간된 카프카 작품의 묶음은 <현대 사회에서 직업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끔 한다.

사회에서 직업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카프카는 사람들의 직업만이 사회에서 자신들을 존재하게 하는 유일한 수단임을 강조한다. 나라는 인간의 존재는 ‘학생’, ‘의사’, ‘군인’ 등의 직업으로서 다른 사람들에게 비춰진다. 나에게 있어서 다른 사람들, 즉 사회가 이러한 직업이라는 이름표를 내게 부여하는 것이고, 내가 그러한 이름표를 잃는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밑에서 소개할 예정이지만, 위 책 안에 포함된 카프카의 단편 ⌈유형지에서⌋와 ⌈단식 광대⌋는 이러한 카프카의 견해를 비교적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유형지에서⌋의 장교는 유형지 내에서 자신의 권력은 검사, 변호사, 판사 그 자체이며 그러한 자신의 의무가 사회에서 자신이 존재함을 증명한다. 그렇기에 외국의 탐험가가 단순한 경범죄로 군인을 사형시키는 것은 도덕적으로 어긋난다고 말한 순간 장교는 자신의 직업을, 존재 자체를 부정당했던 것이다. 또한 ⌈단식 광대⌋에서는 사람들에게 40일간 이어지는 단식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것을 주된 직업으로 삼는 광대가 등장한다. 이 광대는 몇날 몇일이고 ‘단식’을 하는 것만이 자신이 할 줄 아는 유일한 것이자 사회에서 부여된 자신의 의무다. 어느 날 사람들이 단식에 대한 흥미를 잃자 그들은 단식 광대의 존재 자체를 잊어버린다.

단식만 할 줄 아는 광대가 단식에 관심 없는 사람들 속에서 존재할 수 있을까, 아니면 존재한다고 말할 수라도 있을까. 카프카는 사회 속에서 직업이야말로 현대를 살아가는 유일한 존재 형식임을 밝힌다. ⌈변신⌋은 ⌈심판⌋과 더불어 프란츠 카프카를 대표하는 소설이다. 사회에서 ‘직업’이라는 형식이 가지는 의미가 ⌈변신⌋에서도 어느 정도 깔려 있다. 갑작스레 커다란 벌레로 변한 주인공은 사회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을 수 없어지게 된다. 벌레는 벌레로 변하기 전 자신의 존재 이유를 곰곰히 생각한다. 그것은 자신을 위해 자신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사회를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자신이 존재함을 깨닫게 해준다. 저자의 이러한 가치관을 고려하며 ⌈변신⌋을 읽어보자.

c3409e18b364c0e4b32a228c8fba2ada

<변신 Die Verwandlung>

⌈변신⌋에서는 젊은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를 비롯해 여동생, 어머니, 아버지로 구성된 ‘잠자 가족’이 주된 캐릭터로서 등장한다. ⌈심판⌋에서 어처구니 없게 주인공이 재판소로부터 구속되면서 이야기가 펼쳐지듯이 그레고르는 어느 날 자신의 침대에서 눈을 떠보니 기괴하면서도 거대한 딱정벌레로 변한 자신을 발견한다. 갑작스러운 변신이 일어났음에도 꽤 침착하게 생각을 정리하는 그레고르는 거대한 벌레로 변신한 자기 자신보다 일하러 가기 위해 타야 하는 아침 기차를 놓친 상황에 대해 더 고심하는 듯 하다. 잠자 가족의 가장인 잠자 씨가 지배인에게 빚을 지는 바람에 젊은 그레고르 잠자가 그 지배인 밑에서 매일 같이 아침 일찍 기차를 타고 외판원으로 일을 하러 가야만 했던 것이다. 그레고르는 늦잠을 잔 데 더불어 벌레가 된 자신의 몸에 적응하지 못해 참다못한 지배인이 자신의 집에 올 때 까지 문 밖에 나가기는 커녕 침대에서 일어날 수도 없었다. 단순 꾀병인줄로만 아는 지배인과 가족들의 언쟁에 떠밀려 그레고르는 넙적한 자신의 몸으로 겨우 문을 열 수 있었다. 흉측한 그레고르의 모습을 본 가족들은 놀라 쓰러지고, 지배인은 부리나케 밖으로 도망친다.

가족들을 벌레를 경멸하며 그나마 여동생만이 용기를 내어 벌레를 보살핀다. 벌레로 변한 그레고르는 날이 갈수록 점점 실제 벌레처럼 행동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어둡고 습진 쇼파 밑을 좋아하고 썩어 빠진 음식들이 입에 맞게 된 것이다. 벌레의 삶에 점점 적응해지는 벌레 그레고르 자신과는 달리 가족들은, 심지어 그 거대한 벌레를 보고도 호의적으로 음식을 내어주던 그레고르의 여동생 조차 소름끼치는 벌레의 존재를 의식하게 된다. 궁핍해진 잠자 가족은 아버지, 어머니, 여동생 모두가 일을 나가기에 이르고 집 한켠은 세 남자에게 세를 내주는 등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잠자 가족은 역겨우며 밥값만 축내는 거대한 벌레에게 점차 희망을 잃어가고, 마지막 순간에는 여동생 조차 ‘이미 그레고르는 온데 간데 없고 만약 벌레가 우리에게 일어난 일들(불행해지는 가족들)을 볼 수 있었다면 진작에 사라져 줬을 것’ 이라고 말하기에 이른다. 그레고르는 사랑하던 여동생의 그러한 말을 들은 후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한다. 믿어왔던 여동생 조차 그레고르가 벌레의 몸 속에 살아있으며 가족들의 대화를 들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저버린 것이다. 그는 쇼파 밑 음침한 곳에서 조용히 숨을 거두었고 가족들은 벌레의 시체따위는 보지도 않는다. 대신, 그들은 자신들의 삶에서 벌레가 사라진 것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꿈꾸던 미래에 대해 얘기하며 소설은 끝이 난다.

depositphotos_195333356-stock-video-seamless-animation-connecting-people-on

<거대한 딱정벌레로의 변신이 의미하는 바는?>

‘… 그의 존재는 가정을 위한 것이며 사회를 위한 것이다. 즉 자기를 위한 자기가 아니라 타인을 위한 자기였다. 본래의 자기로부터 사회 기구와 관습에 얽매인 인간으로 타락해버린 것이다…’ – 옮긴이 이덕형

⌈변신⌋의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는, 늙은 아버지와 아직 학생인 여동생 그리고 어머니를 모두 먹여살리는 유일한 노동 자원이었다. 그는 허공에 펄덕이는 징그러운 벌레의 다리를 보고도 경악하기보다 직장에 늦어 상사에게 혼날 걱정만 늘어놓는다. 그런가 하면 그의 가족들은 십수년간의 유대감과 가족애로 길러졌을 법한 ‘아들’이나 ‘오빠’를 잃었다는 인간으로서의 상실감보다는 가정을 책임질 일꾼이 없어졌다는 한탄, 혹은 왜 하필 그러한 변신이 우리 가족에게서 일어났는지에 대한 분노감과 공허함이 느껴진다. ⌈변신⌋의 해석을 ‘타인을 위한, 사회를 위한 자기’로 요약한 옮긴이의 견해처럼 소설의 주인공 그레고르는 벌레로 변신함으로 인해서 자기 자신에 대한 존재적 탐구를 하게 된다. 이야기의 외면에는 사람이 벌레로 변한다는 흥미로운 주제와 예상할 법한 벌레로서의 삶, 그리고 벌레로서의 허무한 마무리가 드러난다. 하지만 가끔 드러나는 그레고르의 자신의 가족을 보는 시선과 그를 통해 심화되어가는 자신의 존재 자체에 대한 허망감이 <현대인은 사회에 어떻게 존재하는가>라는 철학적인 질문에 곰곰히 생각하게끔 한다. 비록 카프카 특유의 허무주의와 비극적 결론이 뒤따르지만.

카프카의 작품들이 그러하듯, 왜 하필 그레고르에게 변신이 일어나 그가 비극적으로 죽음을 맞이하는지 따위의 감성적인 이유는 없다. 어떠한 죄를 지어서 신이 ‘카르마’의 형태로 그를 벌레로 만드는 벌을 내렸다든지, 가족 내 일만 하느라 등한시되는 장남의 헌신적 처우를 밝히고자 작가가 조작한 소설의 설정 따위도 아니다. 프란츠 카프카라는 작가 자체가 맨 처음에서도 소개했듯이 ‘사회에 얽매이지 않는’ 그리고 ‘신체 노동을 통한’ 삶을 열망했기에 ⌈변신⌋에서 주인공의 <벌레화>라는 장치는 카프카가 회의적이게 생각한 사회적 얽매임이라고 보는 게 소설적 배경을 이해하기에 쉽다고 생각한다. ⌈심판⌋에서도 드러났듯이 현대 사회인은 태어나자마자, 언제 어디서든지, 사회적 장치에 의해 구속된다. 카프카 당시, 즉 20세기 초반의 사회적 장치라 하면 극심한 관료주의와 민족주의, 그것들에 따른 시민들의 우매함, 그리고 곳곳에서 소용돌이치는 자본주의나 공산주의 등의 물결들이 있겠다. 그리고 내가 글을 쓰는 21세기 현제의 사회적 장치는 만연해진 자본주의, 그것으로 부터 기인된 사람들의 편협함과 개인주의, 그리고 좋든 싫든 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페미니즘과 민주주의 등이 있겠다. 이 사회적 장치에 다른 이름을 붙이든, 아니면 다른 예시들을 집어넣던 간에 현대 세대 그리고 먼 훗날까지 건재할 카프카 소설들의 공통된 주제이자 배경은, 우리가 사회인으로써 이러한 사회적 장치에서 죽을 때 까지 벗어나지 못하며 오늘날 우리들의 존재는 직업으로서, 혹은 더 풀어 보충하자면 우리가 인간 사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느냐에 대한 여부로서 결정된다는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변신⌋의 <벌레화>는 완벽한 소설적 장치다. 고작 벌레 따위는 돈이 세상을 지배한 자본주의의 세계에서 티끝 만큼의 영향도 미치지 못하고, 그렇기에 주인공 그레고르는 자신의 존재를 잃었다.

<카프카의 단편들 – ⌈유형지에서⌋, ⌈단식 광대⌋, ⌈시골 의사⌋, ⌈판결⌋>

문예출판사에서 출간된 카프카의 ‘변신·시골의사’는 위 네 편의 단편소설을 포함한다. ⌈심판⌋이 미완성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장편소설인지라 한 책에 온전히 실렸던 데 반면 ⌈변신⌋은 비교적 짧고 읽기 쉬운 중편소설이라 카프카의 대표적인 단편소설들이 실려 있다. 가장 처음 파트에서 ⌈유형지에서⌋와 ⌈단식 광대⌋를 <현대 사회에서 직업이 가지는 의미>에 대한 예시로 언급했듯이, 이 네편의 단편들은 주요 등장인물들의 직업적 묘사가 드러나며 인간 사회에서 이들의 존재적 갈등이 드러난다. 개인적으로 ⌈유형지에서⌋와 ⌈단식 광대⌋가 흥미롭고 이해하기 쉬웠던 데 반면 뒤의 두 단편들은 더더욱 내용이 짧은데 반면해 상대적으로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골 의사⌋와 ⌈판결⌋은 카프카의 대표적 단편작으로 유명하다. 내용의 모호함과 난해함이 카프카적인 요소를 돋보이게 해서 일까. 해설과 함께 한 두어번 읽으면 이 두 작품에서도 더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현대 사회의 법률과 도덕, 그리고 생활 양식은 자신의 본래성의 존재를 용납하지 않는다. 카프카의 다른 작품에서도 누차 되풀이되듯이, 현대 사회는 그 경제적 기구의 불가피한 귀결로 인해 인간을 ‘자기 소외’의 상태에 빠지도록 강요한다. 즉 인간은 사회라는 거대한 기계속에 틀어박힌 하나의 톱니바퀴에 지나지 않으며, 그리하여 기능화되고 추상화되고 비인간화되고 말았다. 인간은 직업이라는 형태로 생명이 유지되는 일개의 유물적 기능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 옮긴이 이덕형

위 옮긴이의 해석이 카프카 소설들의 심층적 의미를 실제 소설 밖 세상과 연결시키는, 해석들 중 가장 와닿는 부분인 것 같다.

176f9a967ca1c3529fd693945d8eb9ac

번외로 인터넷을 뒤져보다 알게 된 사실인데, 카프카는 ⌈변신⌋을 출간하려고 할 때 책 표지에 독자들이 자신들의 상상을 일으키도록 ‘벌레’가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한 묘사 대신 깜깜한 방 만을 그려 넣었다. 위에서 카프카 소설들의 근본적 의미에 대해 상술했듯이 단순히 벌레의 생김새나 종류가 소설 내용에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다. 원작이 독일어다 보니까 벌레의 종류도 딱정벌레다, 바퀴벌레다 하는 의견들이 있다고도 한다. 어찌 됐든 흥미로운 내용인듯.

 

 

 

<⌈변신⌋ 줄거리 세줄 요약>

1.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갑자기 거대한 딱정벌레로 변신한 자신을 발견한다.
2. 징그러운 벌레의 모습을 본 가족들과 그레고르가 일하던 직장의 지배인은 경악하고, 갑작스레 ‘잠자 가족’의 유일한 일꾼을 잃게 된 가족은 점차 궁핍한 생활을 살게 된다.
3. 일년 여가 지나면서 가족들은 벌레가 다시 변신할 것이라는 희망을 포기하자 벌레 그레고르는 잊혀짐 속에 외롭게 숨을 거두고, 가족들은 그레고르의 존재는 잊은 채 다시 행복한 삶을 살겠노라고 다짐하며 끝난다.

<⌈변신⌋ 해설 세줄 요약>

1. ‘왜 그레고르는 벌레로 변했나요?’ 등의 질문에 답은 없음. 그냥 작가가 설정한 값임. 카프카의 작품들이 보통 그러함.
2. 작품을 통해 우회적으로 사회에 대한 비판(자본주의, 관료주의 등)이 드러남. 벌레로 변한 주인공은 가족들에게는 ‘일하는 장남’으로서, 사회 전반적으로는 ‘직업이 외판원인 사람’으로서로 밖에 존재할 수 없었던 것임.
3. 그리하여 저자 카프카의 단편소설들에서도 드러나듯이, 현대인에게 있어서 ‘존재한다’란 그들의 직업이라는 형식을 통해 증명되는 것이며, ⌈변신⌋의 개인적인 감상으로서는 ‘돈을 벌 수 있느냐’의 여부가 특히 그레고르 같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존재의 유무가 되는 듯. 즉, 돈 못 벌고 직업 없는 백수면 사회에서 존재할 수 없다는 뜻?

 

 

기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