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되돌아보는 요즘

가끔씩 되돌아보는 요즘 Vol.1 인턴

심심한 일상에 힘을 돋아주는 노래 (요즘 발견함 ㅋㅋ)

매일같이 쏟아지는 각종 미디어 사이에서 정말로 자신만의 이야기를 펼치는 사람을 찾기란 대충 사람들로 북적이는 모래사장에서 온전한 조개껍질을 찾는 격이다. 누군가는 정말 원할지라도 찾기가 어려운건 고사하고 주변에 재밌는 놀거리도 넘쳐나 금방 질린다. 인터넷에서 한 번 지나가면 나중에 기억나더라도 다시 찾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가끔씩 궁금한걸 구글링하다가도 몇몇 ‘대단하신’ 블로그 운영자들을 보곤 한다. 내용이 무엇이든간에 자신에 대한 이야기로 꾸준히 일기장을 써내려가는 사람들. 나는 그러한 굳건한 목적으로 블로그를 시작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 다양성의 사회에서 먼지 쪼가리에 불과한 나의 정체성을 대변해주는 블로그의 존재는 점점 그 목적에 회귀된다. 그것은 무언가가 ‘쌓인다’는 것이다. 지금 읽어보면 어처구니 없는 나의 오래 전 자기기만적 글도, 세상을 다 아는체 했던 염세적인 글도 결국에는 쌓인다. 돌이켜보면 인생에서 ‘다다익선’의 법칙만 적용되고 ‘과유불급’으로부터는 치외법권인 쌓임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일단 돈은 아니다.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물질주의에 가장 잘 적용되니까. 이러한 관점에서, 나는 그러한 ‘쌓임’에 해당되는 것이 독서와 글쓰기라고 생각한다. 무조건 많이 읽고, 무조건 많이 쓰는게 좋지 않을까?

꾸준한 독서도 힘들지만 꾸준한 글쓰기가 더 힘든 것 같다. 블로그의 존재는 그렇기에 빛난다. 다이어리에 꾸준히 일기를 적는건 정말 순수한 동기부여가 필요하겠지만 (적어도 부모님께서 입이 마르도록 그림일기라도 그리라는 소리를 들었던 나는 그렇다), 블로그는 누구나 지나쳐가며 내 글을 볼 수도 있다는 기대감과 부끄러움의 적절한 대립 상태. 그리고 실제로는 정말 눈꼽만큼의 사람들이 내 블로그에 들어온다는 안도감과, 그럼에도 가끔씩 내가 허공에다 타자를 두드리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소중한 댓글들의 따뜻함이 적절한 조화를 이룬다.

어디 재밌는 일 없나…

괜히 머릿글부터 너무 젠체해보이게 쓴 것 같기도 하다 (오랜만에 쓰는 글이라 그런가). 마지막으로 썼던게 대학 마지막 학년을 마치면서 중국으로 교환학생을 갈 예정에 관한 글인거 같다. 올해 1월 초부터 결정난 사안이었고, 2주간 격리하면서 드는 비용과 시간 그리고 5개월간 중국에서 써야 할 돈이 부담됐지만 이전부터 해오던 중국어 공부의 연장선이자 경험 면에서도 좋은 기회였다. 개인적으로 중국이라는 국가에 특별한 감정은 없었지만, 당장 내가 처해있던 상황 – 한국에서 3차 대유행이 퍼지고 중국, 특히 베이징에서는 통제를 철저히 하며 확진자가 거의 나오지 않았던 때 – 에서도 최선의 선택이었다. 나는 현지 대학에 연락해 비자와 관련된 서류를 요청했고, 한주 뒤 요청한 서류는 DHL을 통해 수중에 들어왔으나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서류를 못받았다. 학교가 중국 정부측에 요청해야 하는 비자서류. 아직 막바지 과제와 기말고사가 남아 있었기에 시간은 느끼기보다 더 빨리 지나갔고, 하필이면 베이징만 기본 2주 격리에서 계속 격상되더니 막바지(3월)가 되서는 4주 격리로 늘어났다.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학교는 두 가지의 옵션을 제공했다. 나는 국제경영학과라 방학기간에 교환학생을 통해 추가 학점(더 많은 수업..)과 현지에서 공부한다는 장점이 있다. 3월 – 이미 중국 대학과 씨름하며 늦어질 대로 늦어진 터라 나는 교환학생 대신 인턴을 택했다. 원래는 인턴조차 한국이 아닌 외국에서 해야 했지만, 세계 상황이 상황인지라 한국에서 인턴을 구하기로 했다. 기말고사가 한창일 때라 하루 종일 구직공고를 헤매며 온 신경을 기울이진 않았다. #스타트업, #마케팅, #무역 등의 키워드로 대략 4~5군데에 지원했고, 내 이력서를 보긴 했는지도 아리송할 때 한 마케팅 기업에서 면접 요청을 했다. 미필, 4~6월까지 정해진 기간, 경력 없음의 조건으로 오히려 내가 회사들을 쳐내고 있을 때라 더 없이 반가운 소식이었다. 외국에 본사를 둔 기업으로 직원수가 400여명 정도 되는 큰 기업이었다. 나는 일종의 ‘여의도 증후군’을 겪었다. 블로그 글을 보면 아시겠지만 2년 전에도 여의도의 회계 회사에서 단칼에 탈락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말끔한 양복, 다대다 방식의 면접, 쟁쟁한 지원자 등의 환경은 한 일주일을 여의도 시내에서 노숙해도 적응하기 어려웠다. 특히 작년 7월에 한국에 돌아온 후로 근 8개월간 아주 편안하게 Comfort zone에 갇혀 있었기에 더욱 그랬다. 면접날, 나의 떨리는 목소리를 제외하곤 모든게 예상했던 대로였다. 나는 나와 함께 들어간 미국 출신의 지원자들 3명 사이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 조차 안났다.

일주일 후, 오전에 전화가 왔다. 합격했다는 전화. 나는 막 기말고사가 끝났기에 아침 10시30분의 전화도 비몽사몽에 받았다. 당장 생활 패턴을 바꿀 필요가 있었다. 양복을 사고, 와이셔츠를 많이 사고, 구도도 사고 조금 일찍 잤다 (이 부분은 애매한게 내일 아침 출근인데도 새벽 1시에 글을 쓰는 중이다). 나는 합격자 9명 사이에서 가장 어렸고,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싱가폴에 간 상황과 엇비슷했다. 그 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래도 조금 성장했다는 것과 최소한 나에 대해 잘 안다는 것. 감성에 젖어 새벽에 블로그를 쓰는게 그 증거지 않을까. 일은 재밌었다. 나는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는 말의 스펙트럼을 벗어나지 않는 평범한 사람이었고, 입사 3주 째 어느새 이게 일상인 양 잘 적응하고 있다. 여기까지가 연초에 쓰고 끊겼던 내 블로그의 일기를 이어주는 부분이다. 빨랐고, 극적이었고, 재밌었다. 사실 중간에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오랜만에 쓰는거라 늘여쓰면 재미도 없고 귀찮기도 했다. 또 이렇게 보니 간단하게 쓴 것도 마음에 든다. 3개월의 인턴기간 중 반 정도가 지나면 나의 첫 사회생활에서 느낀 점들로 “가끔씩 되돌아보는 요즘“의 Vol.2를 이어가보도록 해보겠다. 과연 3주 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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