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되돌아보는 요즘

가끔씩 되돌아보는 요즘 Vol.2 사람들 사이에서

지난 4월 1일부터 시작한 리서치 회사에서의 인턴쉽이 어느덧 절반을 넘어섰다. 짧은 시간동안 느낀 점이 있다면 사람이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야지만 그제서야 모든 일에 추진력이 붙는다는 사실이다. 처리해야 할 온갖 일과 생각들이 밀려들어올 때 최상의 효율성이 발휘된다. 하지만 이 때, 최상의 효율성과 최악의 경우인 소득 없이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은 한 끗 차이인것 같다. 해답은 정신력이 아닐까? 바쁜 나날에 정신을 꽉 붙들어 매지 않으면 점점 가속이 붙는 일상의 단조로움에 시간이 채인다. 매 순간이 소중한 100년 인생에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 시기를 순위로 매기는 것은 어리석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소한 나에게 있어 요즘은 정신을 꽉 붙을어 매야 하는 시기다. 일단 할 일 뿐만 아니라 하고 싶은 일도 많다. 인턴 3개월과 9월에 있을 대학 졸업을 무사히 끝마치고, 곧바로 있을 군대에서의 18개월이 당장에 앞둔 과제다. 막연하지만, 블로그에 ‘Singapore business story’를 썼듯이 재밌는 아이디어로 다양한 스타트업을 운영해보고 싶다. 청년의 성공 신화나 백만장자를 꿈꾸지 않는다. 사소하지만, 일상 속에서 스쳐지나가는 것들을 되짚거나 인터넷의 컨텐츠 속에서 보물찾기 하듯이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찾아서 내 마음대로 제련해보는 과정이 좋다.

5월에는 공휴일이 몰려 있고 저번주에는 이틀이나 추가로 휴가를 써서 그러한 정신력이 흐트러진 것 같다. <가끔씩 되돌아보는 요즘 Vol.2>는 첫번째 글을 쓴지 한 달만에 나태해진 나의 정신력을 재충전하기 위해 근 두 달의 인턴 생활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최근 출퇴근하며 읽었던 몇 권의 책들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들에 대해 써보고자 한다.

인턴 에피소드, 그 첫번째

아직 인턴 기간이 끝나지 않았고, 인턴 교육 첫 날에 비밀유지에 대해 강력히 주의를 받았기에 회사 이름이나 구체적인 프로젝트는 언급하지 않고 철저히 1인칭의 관점을 통해 첫 사회생활에 대한 감상 쪽에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A. 가장 힘든 점

인턴 생활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다른게 아니라 위 서문에서 언급했듯이 꾸준한 정신력을 가지고 매일, 매주,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착실히 준비할 의지가 약해진다는 것 같다. 과거에 동기부여와 관련된 영상을 찾아보다 유튜브 알고리즘에 의해 한 강의 동영상의 앞부분만 봤던 기억이 난다. 대강 내용이 극단적으로는 세상을 두 부류 – 원만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며 사소한 행복(일명 소확행)과 일상에서 주는 즐거움으로 인생의 가치를 느끼는 사람, 그리고 가족관계를 포함한 인간관계를 모두 포기하면서 한 분야의 정상에 오르기 위해 해당 분야에 대한 생각만 달고 사는 사람. 굉장히 극명한 이분법이지만, 나는 굳이 따지자면 후자에 속하는 것 같다. 매일같이 가족과의 평온한 저녁을 함께하든,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하든, 블로그에 여행기를 적었듯이 혼자서 자유롭게 한 달동안 유럽을 떠돌아다니든. 당장의 행복이 느껴질까 하면, 혹은 그러한 편안한 현실이라는 Comfort zone이 덮쳐올까 하면 나는 스트레스를 받는다. 좋게 말하면 나만의 성장 동력인 셈이고, 어떻게 보면 패배주의적 강박관념이다. 굳이 남과 자신을 비교하는 경우가 아니더라도 소득 없이 하루가 금새 저물면 죄책감이 크게 든달까.

하지만 매일 같은 시간에 출근하고 퇴근한다는 점에서 그러한 실천을 하기가 확실히 힘들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8시간을 일한다는 점에서 신체적으로 힘들다는 말이 아니다. 오늘 밤에 활기찬 노래를 들으며 이번 달 새로운 아이디어를 꼭 사업계획으로 만들겠다는 새로운 다짐을 세우더라도 내일, 다음 주, 다음 달까지 똑같은 생활 속에 당장 원하는 활동을 못한다는 정신적 괴로움이 크다. 내 개인적인 장점이자 단점이 새로운 계획을 떠올렸을 때 무엇이든지 시작해내는 추진력은 좋으나 바로 다음 적절한 서포트나 동기가 떨어지면 전체 계획이 흐지부지되기 일쑤라는 것이다. 지속적이고 진정한 정신적 의지가 있어야 그 정도의 고비는 쉽게 넘어가는데 나는 아직 정신적 수련이 한참 부족한 것 같다.

B. 다른거 말고. 하는 일 중에 가장 힘들었던 것

특정 분야까지 밝히면 범위가 너무 줄어들어 대략 마케팅/리서치 회사라고 하겠다. 인턴이기 때문에 당연히 하는 일의 깊이도 얄팍하고 무엇보다 무슨 일을 하든지 책임이 적다. 지금까지 해본 업무는 제안서, 보고서, 설문지 등의 문서 한->영과 영->한 번역, 데스크리서치, 설문지 문항 점검, 좌담회 노트테이킹 등이 있다. 비중으로 치자면 한->영 번역이 4할, 설문지 문항 점검이 3할 그리고 나머지 업무들은 상시 변동된다. 팀마다 굵직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던지, 여러 클라이언트를 대상으로 빈도 높은 프로젝트를 진행하던지에 따라 필요한 각 업무들을 상이하겠지만(예: 외국계 기업이 클라이언트일 경우 제안서/보고서 뿐 아니라 모든 문서 번역 필요), 기본적으로 모든 프로젝트마다 거쳐가야 하는 프로세스는 비슷하다. 대략적으로 살펴보자면 쉽게 예상 가능하듯이 프로젝트 제안 > 연구 준비 > 연구 시행 > 결과 보고 및 보고서 작성으로 구성된다. 전체 프로세스를 아울러 직원분들이 프로젝트 매니저의 역할을 하면 인턴들은 기타 부수적인 작업을 한다. 클라이언트사로부터 수주를 받아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시행사라면 전자 부분 – “PM의 총괄 역할”은 동일하나 우리 회사의 경우 “기타 부수적인 작업”의 양이 정말 많은 듯 하다.

앞서 말했듯이 가장 비중이 높으면서도 ‘하는 일’ 중에 가장 힘들었고 앞으로도 힘들 것 같은 일이 번역이다. 번역의 역할은 사실 커뮤니케이션의 문제이기에 클라이언트가 요구한 연구의 본질 – 연구 목적, 결과, 솔루션에 비해 굉장히 부수적이면서도, 필요하면서도, 비용이 많이 들 것이다(?). 하루는 내가 휴일에 좌담회에 참석하느라 연장근무한 대가로 휴가를 이틀 연속으로 맞춰서 공휴일, 주말을 끼어 총 5일 휴가를 썼다. 그런데 하필 그 때가 중간 보고서가 나갈 때라 번역 일손이 부족했다. 내가 하는 대신 외주를 구했다는데 사실 외주 비용은 모른다. 하지만 이번년 초에 다른 회사에서 재택근무로 이러닝 컨텐츠의 번역을 맡다가 도저히 혼자는 못할 것 같아 전문 번역 외주를 알아봤을 때의 비용을 들었을 때 꽤 놀랐었다. 주제야 다르지만 대충 페이지 당 번역해야 되는 양으로 봐서는 그 때와 비슷했을 것이다. 따라서 여러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하면서도 일정이 자주 바뀌는 하청 프로젝트의 특성 상 번역 외주를 맡기기에도 번거롭도 비용도 상당히 나올 테다. 적당히 영어에 능숙하면서도 비용이 많이 들지 않고 언제나 업무를 넘겨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 인턴이야말로 그런 ‘부수적이지만 필요한’ 일에 제격이다.

번역이 힘든 일은, 물론 우리 인턴 동기분들 중에 영어에 아주 능숙해 문제 없는 사람도 있지만, 적어도 내게 있어서는 두 가지 – 번역해야 하는 양과 애매한 단어다. 첫번째로 번역해야 하는 양은 천차만별 그 자체다. 내일 점심 때까지 끝내달라고 부탁받아 ‘그래도 양이 좀 되겠구나’ 생각하다가도 디테일이 적어 정말 금방 끝내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결과 보고서의 경우 경이로울 정도로 한 PPT 페이지에 번역해야 하는 단어와 문장들이 정말 빼곡하다 못해 보이지도 않게 나열되어 있다. 걔중에 가장 (지금까지) 힘들었던 것은 좌담회 형태로 실시했던 정성조사의 60 페이지 짜리 결과 보고서였다. 처음에 받아보고 PPT 장표 수에 한 번 놀랐고, 각 페이지마다 정말 빼곡한 단어 수에 더 놀랐다. 온라인 설문지 등을 통해 완전한 데이터 베이스로 표와 그래프가 주인 정량조사는 그래도 할 만한데, 저 보고서는 정량조사 수준의 글자 수 + 응답자들의 버바텀 응답들을 각 페이지마다 빼곡히 번역해야 했다. 중간 중간에 다른 업무들이 생겨 줄곧 저 번역만 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총 2주간 틈틈히 번역해서 완성했다. 특히 내가 속한 팀은 진행하는 프로젝트의 다양성이 넓기도 하고 인턴 특성 상 요청받은 업무들을 해도 발만 담갔다 뺀 느낌이라 그저 ‘끝냈다~’ 느낌만 든다면, 저거는 약간의 성취감은 느낄 수 있었던 프로젝트였다.

C. 재밌는 점

위에 언급했던 번역 업무가 특히 힘들었지, 그렇다고 나머지 업무들이 재밌었다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딱 한 가지 재밌었던 에피소드는 2주간 재택근무하며 지구 건너편 온라인 좌담회에 참석했던 일이다. 이야기의 발단은 긴데, 짧게 말하자면 원래 프로젝트를 맡으려던 연구원님 한 분이 퇴사하셔서 내가 들어가게 됐다. 말만 거창하지 좌담회를 중재하고 응답자들의 전반적인 대화를 정리해 보고서를 쓰는 PM 역할은 더 경력이 있으신 분이, 나는 좌담회에 참석해 내용을 기록하는 기록자의 역할만 하면 됐기에 인턴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좌담회는 저 지구 반대편에 사시는 분들이 실제 클라이언트사의 제품을 사용해보고 느낀 점, 태도, 향후 의향 등을 묻는 목적이었다. 여쭙고 싶은 제품군이 다양했고 2개의 나라에서 진행했기에 나는 2주에 걸쳐 17개의 좌담회에 참석했다.

아니.. 이렇게 다시 글로 적으니까 조금 거창하긴 하다. 한 좌담회당 진행 시간은 2시간, 그리고 우리는 코로나 때문에 실제 지구 반대편에 가는게 아니라 현지 대행사에 다시 진행을 요청한 것이기에 매 좌담회당 준비 세션과 디브리핑까지 포함하면 3시간 정도 됐다. 3시간 X 17개 = 52시간. 그보다 더 엄청난 사실은 시작이 우리 시간으로 새벽 4시30분에 한다는 것! 재택근무라 시작 바로 전에만 일어나면 됐지만 2주간 딱히 하루 사이클이 변하지는 않아 거의 매일을 12시에 자고 4시에 일어났다. 근무는 4시30분~오후 12시30분까지. 쉬는 시간은 있지만 3시간의 좌담회 중에는 정말 1초도 멍때릴 시간도 없이 온 기력을 쏟아 부어 현지 진행자와 5~8명 정도의 참가자들의 대화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기록해야 한다. 여기서 한 국자 더 떠서, 현지 언어(포르투갈어, 스페인어)를 통역사가 동시통역으로 통역하면, 통역된 영어를 즉석에서 한국어로 옮겨 적어야 하고, 심지어 각 참가자들의 이름도 구분해서 적어야 한다. 손가락도 쉴 새 없이 움직이면서 머리 속은 영어 > 한국어로 옮기고 있고, 눈으로는 화상 미팅의 참가자들 얼굴을 잘 보면서 누가 말하고 있는지 구분해야 하는 삼중 콜라보다. 통역사가 통역하는 채널만 듣고 있기에 통역사가 마구잡이로 영어를 쏟아내면 도대체 누가 대답한건지도 봐야 하기 때문.

설명한 것만 봐서는 번역하는 급으로 힘들었던 에피소드였던 것 같지만 재밌었던 이유는 아무래도 생생히 마케팅 연구가 이루어지는 장면에 함께할 수 있었던 것, 그리고 점점 더 많은 응답자들의 대화를 듣고 두 나라별, 제품군별 응답들을 비교하면서 실제로 내가 느끼기에도 재미 있는 인사이트가 보였기 때문이다. 전자는 단순히 생생한 그리고 신선한 느낌 뿐만 아니라 매 좌담회 별로, 총 17번에 다른 참가자들의 조합, 각각의 성향, 태도 등을 관찰하는게 질릴래야 질릴 수 없었다. 어떤 그룹의 참가자들은 입모아 제품의 미학적인 부분을 공감하며 대화한다면, 다른 그룹의 참가자들은 서로 주거니 받거니 토론하는 것처럼 동의와 비동의의 의견을 펼쳤다. 아쉬웠던 점은 코로나만 없었으면 실제로 현장에 가서 좌담회에 참석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 후자는 이런 마케팅/리서치 회사 현직자들의 대단함을 새삼 느낄 수 있던 부분이었다. 그들은 PM으로서 클라이언트의 요청 사항과 처음 연구를 시작했을 때의 목적을 고려하여 현지 좌담회 시행사와 시시각각 의견을 조율하고(실시간으로 응답자들의 대화를 들으며 좌담회 진행자에게 추가 질문을 요청하는 등), 결국 자신들이 클라이언트에게 최종 솔루션을 제공해야 하기에 각 PM마다 묻는 추가 질문이나 강조하는 파트 등이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단순히 번역이나 문서 작업을 하는 것보다 진정한 인턴의 목적인 ‘현장 경험’을 느낄 수 있었다는게 행운이었고, 따라서 정말 힘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뿌듯하고 재밌었던 에피소드다.

2주간 재택근무했던 내 방. 왼쪽 노트북으로 좌담회를 지켜보고, 중앙 모니터에서 노트테이킹.

전반적으로 지금까지의 인턴 생활은 만족스럽다. 특히 좌담회에서의 경험이 그러했듯이, 실제로 내가 학교에서 전공했고, 배웠고, 또 한편으로는 졸업 논문으로도 썼던 내용들을 실무에서 다시 만나본다는 것은 언제나, 몇 번이고 다시 만난다 해도 뜻깊을게 분명하다. 첫 사회 생활이라 더욱 그렇다.

한 편으로는 불안하다. 지금까지의 경험은 내가 언제나 좋아하는 레퍼토리 – 처음에는 힘들고, 재밌어졌고, 결과적으로는 만족스러웠지만, 이 길이 내 길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인턴 생활 첫 일주일부터 그런 생각이 든 것 같다. ‘재밌는 경험이나 내가 있을 곳은 아니다’고. 물론 서론에서 언급했듯이, 그리고 내 블로그의 정체성이 그러하듯이 내가 원하는 진로는 스타트업 창업이고 후에도 변하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학교에서 ‘배운 것’에 해당하는 일 중 하나가 내 길이 아닌 것 같다는 결과론적인 모순은 입가에 씁쓸함을 남기는 것 같다. 이에 대해서는 – 3개월 인턴 생활의 후기가 될 가끔씩 되돌아보는 요즘 Vol.3에서 생각을 정리하는게 맞을 듯 하다. 그 때 쯤 되면 다시 슬금슬금 나태해지기 시작해 ‘가끔씩 되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행복은 간접적이어야만 한다

요즘 들어 부쩍 행복에 대한 잡념이 많아진다. 최근 출퇴근하면서 읽었던 책 두 권에서 여운을 남기는 파트가 각각 한 군데 씩 있었다. 한 권은 소설이고 다른 한 권은 일종의 자기계발서지만, 결국에 ‘행복’이라는 추상적 개념으로 귀납된다.

Know It All Society – Michael P. Lynch

첫번째 책은 자기계발서라고 할 수도 있는 마이클 린치의 Know It All Society다. 사회에 팽배해 있는 정치적 양면화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왜 행복에 대한 구절이 나왔는지는 기억이 안난다. 뭐가 됐든, 책을 많이 읽는 스타일도 아니기에 인상 깊은 파트 하나만 기억해도 내게는 독서 목표를 달성한 것이다. 책 중반에 영국의 철학자/경제학자인 존 스튜어트 밀의 행복 추구에 대한 내용이 소개된다. 영문을 그대로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Those only are happy (I thought) who have their minds fixed on some object other than their own happiness; on the happiness of others, on the improvement of mankind, even on some art or pursuit, followed not as a means, but as itself an ideal end. Aiming thus at something else, they find happiness by the way.”

Know It All Society 본문에서는 이렇게 소개한다.

“행복에 대한 오래된 철학적 문제가 있다. 아마 그리스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것이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행복을 추구할 때는 어쩔 수 없이 행복이 줄어들기 때문에 행복을 직접 추구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자신의 행복만을 위해 무언가를 할 때 (가령 친구를 만들거나 경력을 쌓는 등) 그 행복은 우리 손에서 빠져나갈 수밖에 없다.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은 자서전에서 이 문제를 훌륭하게 지적하면서 자신에게 행복한지 물어보면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해법은 행복을 간접적으로 좇는 것, 행복을 그 자체로 훌륭한 행위(가령 우정)의 부산물로 여기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행복은 다른 것들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간접적으로만 드러난다.”

해당 인용구를 찾으러 책을 다시 읽으니 왜 위와 같은 구절이 있는지 생각났다. (정치에 있어서의) 진실도 행복처럼 직접적으로 추구하려면 그 의미가 퇴색된다는 것. 어찌 됐든, 책을 읽는 중 그리고 후에도 계속해서 머리 속에 맴돌았던 구절이다. 나 자신을 위해 직접적으로 행복을 좇는 것 – 돈을 많이 버는 것이나 높은 자리를 꽤차고자 하는 극심한 승진욕으로서 (일종의 행복을 위한 방법 1, 2로서) 행복을 추구하면 행복은 역설적이게도 멀어져 간다. 남을 위한 행복을 통해 간접적이게 행복을 좇을 수 있다는 것 – 이는 또 재밌게도 몇주 전 있었던 회사 대표님과의 간담회에서 대표님이 하신 기억에 남는 말과 연결된다. 여자친구가 있으신 인턴 동기 한분에게 “여자친구한테 선물을 받으면 행복한가?”를 물으셨다. – “네 그럼요.” 곧바로 이어지는 자문자답. “그러면 여자친구한테 선물을 줄 때는? 두 배로 기쁘지.”

요즘 들어 행복에 대한 생각이 많아진 이유가 주변에서 이러한 옳고도 옳은 말들이 들려와서 그런 것 같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행복의 역설의 역설. 결국 원점으로 돌아가 행복을 위한 선행이 아닌, 진정성 있으면서도 남으로부터 ‘되돌아옴’을 기대하지 않으며 행동해야 언젠가 행복이 온다는 것.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친구와의 우정에 흔쾌히 밥 한 끼 사주면 될거, 괜히 사줬다는 티, 다음에 커피라도 사라는 티를 내면 굳이 돈 쓴 나 뿐만 아니라 친구의 마음도 불편하다. 오늘부터의 다짐 – 퍼주는 사람이 되자.. ㅎㅎ

The Big Picture – Douglas Kennedy

두번째 책은, 밀리의 서재에서 추천해주어 읽게된 평범한 소설이다. 미국 동부에 사는 한 남자의 삶을 그린다. 남자는 어릴 때부터 사진가가 되고 싶었지만 아버지가 닦아 놓으신 길을 따라 로스쿨에 입학해 변호사가 된다. 남들이 보기에는 돈 잘 버는 뉴욕 교외 전원주택에 사는 변호사. 하지만 오래 전부터 꼬인 부부관계와 불만족스러운 직업은 주인공을 계속해서 패배주의의 구렁텅이로 이끌어 간다. 특히 기분 안좋은 하루, 그 하루는 동네 이웃과 함께 요트를 타고 코네티컷 앞바다로 나간다.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빛나는 가을 태양을 바라보았다. 등 뒤에서 거센 바람이 몰아쳤다. 짠 공기가 폐로 차갑게 밀려들었다. 흥분된 몇 분 동안, 머릿속이 텅 비었다. 죄책감, 두려움, 미움이 모두 깨끗이 씻겨 나가 마치 백지 상태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속도가 주는 순수한 쾌감만이 나를 사로잡았다. 나는 모든 걸 뒤로 한 채 달리고 있었다. 그 무엇도, 그 누구도, 나를 붙잡을 수 없었다.

빌과 나는 한 시간 가까이, 말 한 마디, 눈길 한 번 주고받지 않았다. 전진을 방해하고 한계 안에 가둘 울타리나 장벽이 없는 삶이었다. 속도감이 주는 감각에 흥분한 채 앞만 바라보았다. 빌의 생각을 느낄 수 있었다. 빌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듯했다.

왜 멈추어야 하나? 동쪽으로 가서 대서양을 가로지르지 못할 이유가 뭔가? 이대로 계속 달리지 못할 이유가 뭔가?

누구나 인생의 비상을 갈망한다. 그러면서도 스스로를 가족이라는 덫에 더 깊이 파묻고 산다. 가볍게 여행하기를 꿈꾸면서도, 무거운 짐을 지고 한 곳에 머무를 수밖에 없을 만큼 많은 걸 축적하고 산다. 다른 사람 탓이 아니다. 순전히 자기 자신 탓이다. 누구나 탈출을 바라지만 의무를 저버리지 못한다. 경력, 집, 가족, 빚. 그런 것들이 우리가 살아가는 발판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안전을, 아침에 일어날 이유를 제공하니까. 선택은 좁아지지만 안정을 준다. 누구나 가정이 지워주는 짐 때문에 막다른 길에 다다르지만, 우리는 기꺼이 그 짐을 떠안는다.”

첫번째 책에서 전달해주는 ‘행복’이 이상적이고 철학적인 행복이라면 The Big Picture의 위 구절에서 들려주는 ‘행복’은 현실적이고 나에게 더 적용가능한 행복이다. 책의 주인공처럼 누구나 인생의 쉬지 않고 뛰어가는 달리기를 잠깐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면 아는 사실 –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지 못한 이유가 뭔가?” 주인공이 막연히 펼쳐진 푸른 바다와 해가 저물어가는 하늘을 보며 한 말 “이대로 계속 달리지 못할 이유가 뭔가?”와 맞아 떨어진다. 해당 구절은 책의 초입부에 등장한다. 과연 소설의 주인공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행복해질 수 있었을까? 책을 한 번 읽어보는걸 추천한다.

5일 휴가내고 부산에서; 저게 행복한 표정인가

벌써 절반이 지났고 한 달만이 남아간다. 초반에는 짬짬이 책도 많이 읽었는데 요즘은 다시 나태해져간다. Vol.2를 쓰면서 요즘에 일어났던 일들과 나를 되돌아봤으니, 다시 남은 한 달 힘낼 수 있기를.

기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