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 별 거 아님

Vol. 8 육군창업경진대회 본선 진출

지난 한 달은 6개월 채 안된 내 군 생활에서 가장 바쁘면서도 다이내믹한 시간이었다. 창업경진대회가 가져다준 희망과 도전의 역할이 컸다. 3-4월 한 달을 말 그대로 창업대회에 온전히 투자했다. 3시간 남짓한 핸드폰 시간에 맘카페를 돌아다니면서 설문조사를 돌렸고, 밤 10-12시까지 연등 시간에는 사업계획서를 다듬고 또 다듬었다. 49개 팀을 추리는 예선전에서 떨어진다면 오히려 기가 찰만한 노력이었다. 다른 한 편으론 지난 2주간 평택 험프리스 미군기지에 내려가 매일 12시간씩 번역과 통역에 시달렸다. 주말에는 미군과 볼링도 치고, 어학병 신분으로 경험하기 쉽지 않은 사령부급 회의 통역도 경험해볼 수 있었다. 글을 쓰는 현재는 막 육군창업경진대회 본선 발표자료를 송부하고 다음주에 있을 최종평가를 준비하고 있다. 힘들어서 더 기억에 남는 지난 한 달을 일기 형식으로 써보겠다.

3월 말

창업대회 예선 준비는 그다지 문제도 없었지만 이렇다 할 감상도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건 남도 좋아할 거라는 오해를 절실히 느꼈다. 나는 애초에 창업가가 꿈이고 정말 완벽한 시기에 대회 공문이 내려왔기에 팔 한쪽을 분지르더라도 우승하자는 필승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아니었다. 누구나 창업이 성공해 떼돈이나 스포트라이트 받는 것을 싫어하진 않겠으나, 정말 바닥부터 시작해 창업 아이디어의 골조를 세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았다. 내 아이디어는 아니었지만 나는 단순한 페이퍼플랜이 아니라 대회일지라도 실제로 창업 비스무리한 무언가를 한다는 것에 굉장히 심취해 있었다. 일종의 팀 리더를 맡으며 역할 배분부터 피상적인 아이디어의 구체화까지 전반적인 부분에 관여했고, 나 자신은 사업전략 담당이었기에 많은 자료를 읽어보며 시장분석을 진행했다. 앞서 말했듯, 아무런 보상이나 결과가 확정되지 않는 예선전이다보니 팀원들의 참여와 관심이 저조했다. 예선전이라 높은 결과물은 필요 없었을 수도 있었겠으나, 이왕 시작한거 제대로 해보자는 마인드와 내가 고대해왔던 창업대회를 예선부터 떨어지면 안된다는 생각에 조금은 과도하게 준비했다. 먼저, 우리 아이디어의 사업성을 실질적으로 증명해줄 증거를 위해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소비자 심리 관련 졸업논문과 리서치 회사 인턴에서 경험했던 형식이 있었기에 질문 항목 구성은 수월했으나 역시 문제는 설문지 배포였다. 돈 몇만원을 주고 대행하는 업체에 맡길까도 생각했으나, 나 또한 예선전에서 열정은 쓰되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는 돈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결국 고안했던 건, 우리 아이디어의 주 고객이 될법한 3~40대 여성이 많이 활동하는 맘카페를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것이었다. 엄마 아이디를 빌려, 매일 핸드폰을 받는 저녁 시간대 사지방에 와서 설문글 올리기를 1주일 남짓 했던것 같다.

4월 초

어학병들로 구성된 우리 팀은 평균 학력이 높을 뿐만 아니라 (좋은 쪽에서) 자기 주장이 강했다. 서로가 준비하는 시험이나 매일 지키는 루틴이 있었기에 자유시간을 모두 대회에 할애했던 나만큼의 참여와 헌신을 기대하지 못하는 건 당연지사였다. 반대로 자기 주장이 강하던 것은 자기 자신의 역량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다는 의미라는 것을 깨달았다. 한 달이 조금 넘었던 준비기간 동안 우리는 제출 1주일 전 이제는 더 늦어질 수 없다는 상호 이해 아래 다시 뭉쳤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내가 한 달동안 고민했던 남겨진 다른 파트들이 그 짧은 며칠 안에 완성됐다. 그 며칠동안 사지방은 우리들만의 사무실 같았다. 밤 연등 시간에 모여 논쟁하고, 자료 찾고, 글 썼던 시간은 대학 시절때도 못 느꼈던 열정이 있었다. 우리는 마감 이틀 전 제출을 완료했다. 후련했고, 통과할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군대라서 아쉽지만 PX의 무알콜 맥주로 축배를 들었다.

4월 말

창업대회 예선이 끝나자 마자 나는 평택으로 내려갔다. 매년 2번 실시하는 한미연합훈련 때문인데, 우리 부대는 전시에 평택으로 내려가기 때문에 대부분의 인력들이 2주치 짐을 싸서 미군기지로 들어갔다. 숙소는 2인 1실이었고, 매트리스는 군대에서 느끼기 힘든 푹신함에, 급식소는 뷔페식이었다. 일은 야간조라 많지는 않았으나, 잠과의 사투가 가장 힘들었다. 매일 12시간 근무에 출근 전 퇴근 후에 식사 하러 가는 시간까지 포함하면 정말 숙소에 돌아와서 씻고 바로 잠들어도 6~7시간 가량 잘 수 있었다. 일은 매일 아침에 보고하는 문서들의 번역과 밤중에 진행하는 회의 통역이었는데(or 같이 근무하는 미군 통역), 문서는 12시간동안 끊임 없이 수정되고 통역은 계속 들어가니 내용이나 진행이 익숙해졌지만, 장장 1시간동안 모든 말을 한-영, 영-한으로 바꿔야 하기에 진이 빠졌다. 주말에는 쉴 수 있었다. 우리는 주말의 단 1분도 낭비하면 안된다는 생각에 일어나자마자 쇼핑몰의 볼링장으로 향했고, 저녁에는 미군들이랑 다시 볼링을 치러 가서 재밌는 시간을 보냈다. 평소에 50 언저리를 치던 나는 내기가 더해지자 140까지 치기도 했다. 2주라는 시간이 길게 느껴졌고, 마지막에 헤어지면서는 미군들과 유쾌하게 선물을 교환하기도 했다.

5월 초

평택에서 돌아온 다음 날, 바로 창업대회 예선전 결과가 나왔다.

나는 이날 당직이었는데, 오후에 전화로 기쁜 소식을 전해들었다. 동시에 본선자료 제출 마감이 다음주까지라는 촉박함에 바로 PPT 자료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군대에서 대회 준비의 문제점은 다름아닌 보안성이었다. 자료를 만들고 전송하는데도 승인과 긴 기다림이 필요했고, 특히 영상 발표자료를 찍어야 했기에 양해를 구해가며 5분짜리 영상을 만들었다. 아무래도 짧은 시간이다 보니 예선전때 처럼 고민과 수정을 할 여유조차 없었다. 이틀만에 PPT를 완성했고, 4일째 되는 날 영상 촬영과 편집까지 완료했다. 예선전 마지막 1주일 때처럼 긴박하고 재밌었던 시간이었다. 한 가지 다른 점은, 이번에는 모두가 열정적이었다. 예선 통과로 인한 포상휴가 5일이 주어졌고 예선 통과의 의미는 실제 사업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는 의미였기 때문인지, 아이디어를 제공한 팀장의 지휘 아래 우리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결과적으로는 만족할 만한 영상을 얻었다. 5일만에 제출한 것 치고는(그것도 군대에서), 정말 모두가 합심했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이제 다음주면 질의응답을 진행하고 3주 후면 최종 결과가 나올 것 같다. 지난 1.5개월동안의 고생과 열정, 그리고 그토록 기대했던 창업대회를 일단 마무리했다는 점에서 나는 충분히 만족한다. 그럼에도 솔직히 말하자면, 이렇게 고생한 만큼 대상까진 아니여도 입상하면 좋겠다는 욕심이 있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 다음 블로그 포스팅에서는 어떻게든 다른 좋은 소식을 가져와보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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