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농담」&「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밀란 쿤데라

“이런 실수들은 너무도 흔하고 일반적인 것이어서 세상의 이치 속에서 예외나 <잘못>도 될 수 없고 오히려 그 순리를 구성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누가 잘못한 것이란 말인가? 역사 자체가? 그 신성한, 합리적인 역사가? 그런데 왜 그런 실수들이 역사 탓이라고 해야만 할 것인가? 인간으로서의 나의 이성에만 그렇게 보일 뿐, 만일 역사가 자기 고유의 이성을 가지고 있다면, 무엇 때문에 그 이성이 인간들의 이해를 신경쓸 것이며 여선생처럼 꼭 진지해야 하겠는가? 그리고 만일 역사가 장난을 한다면? 그 순간 나는, 나 자신이 그리고 내 인생 전체가 훨씬 더 광대하고 전적으로 철회 불가능한 농담속에 포함되어 있는 이상, 나 자신의 농담을 완전히 무화시켜 버릴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P. 391 「농담」, 민음사)

밀란 쿤데라의 구성력은 경이롭고 이야기의 몰입도는 중독성 있는 컴퓨터 게임을 능가한다. 밀란 쿤데라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하다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너무나도 빠져들며 읽은 후 도전해보는 그의 처녀작이라 한 편으론 걱정됐다. 일단 「농담」이라는, 어떻게 보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보여준 정교하고 비유적이고 상징적인 주제와 구성과는 다르게 깊이가 얇고 말 그대로 한 마디의 ‘농담’처럼 끝날 것 같은 책의 제목에 긴장했다. 물론 그렇진 않았다. 「농담」에서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관통하는 주제였던, 우리들은 한 번 뿐인 인생을 무겁고 대단한 서사시처럼 생각하지만 사실은 한 번 지나가버린 순간들의 돌이킬 수 없는 가벼움 그리고 그렇기에 사람들 사이의 영원한 사랑이라는 관념이 얼마나 가볍게 무너지고 다시 일어서는지를 보여준다. 오히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제목에서부터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존재, 즉 우리들 인생의 가벼움’보다, 그로부터 몇십 년 전에 처음 출판했던 처녀적 「농담」에서 그러한 주제가 더 분명하고 뜻 깊게 다가오는 것 같았다. 밀란 쿤데라는 소설 속 주인공을 옹호하거나, 영웅화하거나, 주인공이란 이유만으로 해피엔딩을 선사하지 않는다. 그저 현실을 이야기한다. 현실은 곧 나 자신만이 주인공인 세상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의, 서로의 사정이 얽히고 섥힌 지저분한 공간이다. 그렇기에 지극히 가벼워보이는 ‘잠깐의 농담’이 인생 하나를 통째로 뒤바꿀 수도, 심각해보이는 사회적인 물결 – 공산주의나 전쟁 같은 것들이 –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었을 수도 있다.

“이 쓸데없는 지난 며칠간을 내 인생에서 지워버릴 수 있다고 한들 그것이 내게 무슨 도움이 될 것인가, 내 인생의 일들 전부가 엽서의 농담과 더불어 생겨났던 것인데? 나는 실수로 생겨난 일들이 이유와 필연성에 의해 생겨난 일들과 마찬가지로 똑같이 실제적이라는 것을 느끼며 전율했다.”

(P. 391 「농담」, 민음사)

밀란 쿤데라의 두 소설의 구성은 엇비슷하다. 실제로는 단지 며칠 사이에 일어난 현실의 사건들이 4~5명의 중심 등장인물들을 중심으로 다르게 해석되며, 점차 실마리가 끼워맞춰진다. 그래서 책의 시작부터 등장인물들의 인생 속 일련의 사건들의 갑작스러운 한 부분으로 뛰어들어버리는 구성에 독자들을 당혹시킨다. 이러한 구성은 여느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친절한 구성이 아니다. 한 명의 주인공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여타 창작물과는 달리, 그리고 그렇기에 전체 이야기를 한 명의 주인공의 관점으로 철저히 빠져들어 이해하게되는 작품들과는 달리, 우리들은 밀란 쿤데라의 소설에서 각기 다른 등장인물들의 각기 다른 삶의 방식, 가치관, 감정선으로 빠져든다. 그렇기에 절대적인 우위가 생기지 않는 것이다. 영화에서 우리는 선한 히어로를 응원하고,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결국 마지막화에서는 행복하기를 바라는 것과는 달리, 밀란 쿤데라는 여러 인물들의 지극히 평범하고 그렇기에 현실을 거스를 수 없는, 불가항력을 얘기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성력 덕분에 그가 말하고자 하는 한번 뿐인 인생의 가벼움이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우리에게 더 쉽게 다가온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 가지 헛된 믿음에 빠져 있다. 기억(사람, 사물, 행위, 민족등에 대한 기억)의 영속성에 대한 믿음과 (행위, 실수, 죄, 잘못 등을) 고쳐볼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 그것이다. 이것은 둘다 마찬가지로 잘못된 믿음이다. 진실은 오히려 정반대이다. 모든 것은 잊혀지고, 고쳐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무엇을 (복수에 의해서 그리고 용서에 의해서) 고친다는 일은 망각이 담당할 것이다. 그 누구도 이미 저질러진 잘못을 고치지 못하겠지만 모든 잘못이 잊혀질 것이다.”

(P. 398 「농담」, 민음사)

빠져드는 이야기 속, 등장인물들의 인생은 결국 하나의 결론으로 다다른다. 인생은 참을 수 없이, 피해갈 수 없이 가볍기에 등장인물들은 어떻게 행동하며, 더 나아가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앞서 말한 것 처럼, 정답은 없다. (1) 인생은 지극히 가볍기에, 어쨋든 과거를 고칠 수는 없기에 우리는 그냥 살아야 하며, (2) 모든 것들 – 부정적인 실수나 잘못, 긍정적인 첫사랑이나 성취감도 – 은 결국 잊혀지기 때문이다. 「농담」에서 밀란 쿤데라는 인간에게 내재한 상반성을 통해 먼저 등장인물들의 갈등을 설명하고, 결국 그 상반성으로 하여금 등장인물들이 그저 현실에 만족하며 또 다른 내일을 위해 살아가게끔 결론짓는다. 상반성이란 무엇인가? 「농담」에서 우리는 냉전 당시 체코슬로바키에아에 스며든 공산주의의 물결과 서양 자본주의 문화의 유입이라는 배경적 상반성을 본다. 어릴 적 가장 친한 친구였던 등장인물은 어느 새 남이 되었다가, 배신자가 되었다가, 다시 절친으로 되돌아온다. 등장인물의 감정선도 마찬가지다. 주인공 중 한명인 루드빅이 만난 두 여인, 루치에와 헬레나는 상반된 인간성을 가지고 있다. 추상적이고, 비물질적이고, 상징적이고, 일종의 ‘믿음’과 같은 첫사랑 루치에. 그리고 실제적이고, 물질적이며, 육체적인 현재 애인 헬레나. 이러한 모든 상반성은 소설 전체를 아우르며, 등장인물, 특히 루드빅은 과거의 잘못됐다고 생각한 선택들을 끊임없이 후회한다. 가장 원초적으로는 허울 뿐인 공산당원이 되기로 했던 자신, 여자에게 관심을 얻기 위한 편지 속 작은 농담 한 마디를 건넨 자신, 크게 저항해보지 않고 그로 인한 당에서의 축출을 받아들인 자신, 육체적인 교감에 이끌려 첫사랑 루치에를 몰아내버린 자신 … 하지만 루드빅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과거 자신에 대한 후회나 타인에 대한 복수는 부질없으며 결국 잊혀져간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는 결국 원초적인 자기 자신으로 되돌아가 현재를 즐기며 미래를 위해 걱정한다. 과거에 대한 걱정이 아닌 미래를 위한 인생.

루드빅이 핵심 등장인물이라 그렇지 다른 주인공들의 변화도 루드빅과 마찬가지다. 그들은 과거에 사무라치게 집착하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과거를 잊어버리고 현실로 되돌아온다. 루드빅의 예전 절친이었던 야로슬라브는 그들의 추억이었던 민속음악을 저버린 그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남처럼 대했다가도 며칠 후에는 같이 행복하게 악기를 연주한다. 헬레나는 불과 일주일동안 루드빅을 자신의 인생에 한번 뿐인 영원한 동반자라고 굳게 믿었음에도 단 하루만에 그의 본질을 알아버린 후 그를 저버린다. 소설 내에서는 그녀에 대한 다음 이야기가 없지만, 아마도 밀란 쿤데라가 전달하려고 하는 교훈처럼 어느새 과거를 깔끔히 잊고 자기가 좋아하는 기자 일을 하며, 미래를 위해 살아갈 것이다. 아무리 현실적이고 평범하다고 해도 소설은 소설이니만큼 과장과 우연성을 곁들인 맛이 없진 않지만, 우리들의 인생도 한명한명 뜯어서 들여다보면 다양한 갈등과 실수로 범벅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오늘을 살며 내일을 준비한다. ‘나는 쟤랑은 죽었다 깨어나도 안맞아’나 ‘나는 얘랑 평생 사랑해야지’와 같은 영속성의 기반한 결심을 하더라도 우리들은 곧 그것들을 쉽게 망각하기 때문이다. 당장 내일이면 불편했던 친구와 공통점을 한 가지 발견하고, 사랑했던 애인과 불협화음이 생길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인생에 정답은 없다. 이미 일어난 실수와 잘못도 역사의 한 부분이다. 과거는 되돌릴 수 없다는 시간의 불가항력에 우리는 순종하며, 과거의 아름답지 못했던 나의 실수와 잘못을 고칠 수 있기를 갈망하며 걱정하기보다는, 현재의 나를 기준으로 현재를 살아가야 한다.

밀란 쿤데라의 소설은 어려우면서도 재밌고, 엄청나게 많은 결론과 생각으로 이어지면서도 그것들은 다시 하나의 원초적인 인생의 법칙이자 진리로 매듭지어지는 것 같다. 한 달 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처음 읽기 시작한 계기는 단순히 과거에 ‘뉴욕 타임즈가 선정한 필독도서 100선’과 같은 기사를 보며 흥미로운 제목에 기억하다가 우연히 장병도서관에 있었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이해가 어려우면서도 금세 빠져들어 몰입하고, 너무 여러 가지 내용이 나와 훈련소 때 구매한 작은 필기 노트에 책의 구절을 빼곡히 적으면서도 작가가 말하고자 한 한 가지의 결론으로 그것들이 이어지는 감동적이면서도 애정이 느껴지는 책은 지금 껏 없었던 것 같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이어 「농담」을 읽으며 밀란 쿤데라라는 사람의 뛰어난 예술성을 다시금 확인하면서도 그의 나머지 저서들을 하루빨리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올해의 병 장기개발 비용을 모두 다른 책들을 사느라 탕진했기에 내년 지원 비용으로 밀란 쿤데라 전집을 구매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앞선 두 책의 달콤함이 남아 계속 생각나기에, 거금 15만원을 들어서라도 구매할지도 모르겠다. 열 몇 권에 달하는 문학 전집을 관물대에 전시해두면 선임들도 참 대단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볼 것 같다. 어찌 됐든, 때로는 무료한 군인 일상에 독서라는 열정이 불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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