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 별 거 아님

Vol.5 군대에서 맞이하는 23

19세기 영국의 예술 평론가 존 러스킨은 산업혁명으로 가속화되는 사람들의 이동 속도에 대해 “모든 여행은 정확히 그 속도만큼 더 따분해진다”고 평했다. 1세기가 더 지난 지금, 우리들의 일상은 비단 이동 속도 뿐만 아니라 정보의 습득, 기술의 발전, 심지어는 밥 먹는 속도까지도 점점 빨라지는 추세다. 그 중 우리의 삶 모든 부분과 결정적인 인과성을 가진 스마트폰의 경우, 위에서 언급한 모든 속도의 가속화에 원인과 결과가 되는 수단이 아닌가. 존 러스킨의 말을 빗대면 스마트폰에 의해 빠르고 조급해진 우리들의 한번 뿐인 여행같은 인생은 필히 점점 따분해질 것이다. 세간의 큰 이목을 끌진 못하는듯 하지만 매년 9월 5일마다 하루간 스마트폰 사용을 멀리하는 Digital Detox Day나 행복한 삶을 위해 SNS 사용을 줄이자는 #timetologoff같은 활동 단체들은 이러한 위기감을 인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육군훈련소의 5주는 내게 훌륭한 디지털 해독제가 되었다. 우리들은 현대사회의 초고속인터넷과 넷플릭스로부터 멀어져 사람들간의 대화와 대화 속의 유희같은 천천히 흘러가면서도 원초적인 행복감을 느꼈다. 5주간 나는 처음으로 인간관계에 대해 깊게 생각해볼 수 있었으면서도 창업을 굳게 결심했던 3년 전 어느 날 이후로 그 결심을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로까지 확신할 수 있었다. 한 달에 한번씩 나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려고 만든 이 시리즈의 5번째 이야기로는, 이처럼 빠르게 기차를 타고 여행하던 인생에서 잠시 내려 주위를 둘러보며 걸어간 지난 5주간의 얘기를 담아본다.

<2022. 01. 02>

1. Just a month before joining the army…

2021년 가을부로 3년에 걸친 대학 생활이 끝났다. 싱가포르 대학에서 1년, 영국 대학으로 편입 후 2년이었다. 대학을 갓 졸업한 누군가에게 3년 내지는 4년의 대학 생활을 위처럼 ‘속도’로 답하라면 어떨까. 강의가 밀려 있던 재작년 겨울이나 친구들, 연인과 시간을 보낸 여름방학 등 과거의 특정 시간대를 보면 <속도는 상대적인 것> 이라는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그때그때 느끼는 빠르기가 제각각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대학 생활 중 사소하더라도 얼마나 다채로운 경험을 했는지가 곧장 앞만 보고 직진했을 수도 있던 3, 4년을 주위도 둘러보고 잠시 쉬어가게 함으로써 더욱 재밌고 기억에 남는 시간으로 만들어주는 것 같다. 지난 3년간 나는 무작정 직진만 했는가? 아니면 새로운 풍경이나 우연한 사건을 포착하기 위해 주위를 둘러봤는가? 싱가포르 클락키에서 밤을 새면서 놀았던 다리 위, 방에 틀어박혀 겨울내 밀린 과제를 하던 영국 버밍엄의 학교 기숙사, 아이슬란드 인구 1600명의 항구도시 회픈(Hofn)에서 차가 고장나 반나절간 정신줄을 놓았던 순간이나 아무 생각 없이 버스 창가에 기댄 채 지나간 호주 멜버른의 그레이트 오션 로드.

30,000장이 넘는 핸드폰 사진첩과 지인들과의 소중한 기억들은 지난 3년을 느리지만 따분하지 않았던 뿌듯한 삶을 대변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무언가를 더 원했다. 무언가 깊고 원초적인 삶의 의미랄까. 지난간의 다채로움은 너무 일상적인 행복에 근거해왔었다. 렌트카 여행, 술과 담배, 친구들과의 장난스런 잡담, 그리고 물질적인 행복. 그러한 단순함과 행복의 피상성에 도취되어 나는 매일마다 새로운 창업 아이디어를 생각하고, 비슷한 뜻을 가진 친구들과 의견을 공유하고, 최종적으로 이를 기반으로 창업하겠다는 본질적인 목표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나는 우선 생각했다. 어떻게 이러한 현상(現狀)을 깨부실 것인가. 답은 변화였다. 나는 일상의 변화로 독서실에 틀어박혀 미국 대학원 시험, GRE를 공부하는 것을 택했다.

그렇다, 대학원. 코로나 때문에 집에서 날린 마지막 1년이 계속 아쉬움으로 남았거나, 제대 후 바로 사회로 던져진다는 현실에 겁먹었던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아주 적은 확률이지만 작년 초에 전전긍긍했던 졸업논문에 이상한 매력을 느끼고 있었던 걸 수도 있고. 어찌 됐든, 그런 답을 얻은 나는 마지막 한 달을 GRE와 함께 보냈다. 일단은 막연히 바쁜 주변인들처럼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다’는 느낌에 안심됐다. 그리고 좋은 대학원은 내가 항상 아쉬워하던 학력과 인적 네트워킹에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시험 준비는 단순했다. 대부분의 시간은 괴랄한 영어 단어들을 외우는데 할애됐고, 수리능력과 글쓰기는 대략 살펴봤을 때 ‘할 만 해 보이는데?’라는 생각과 한 달이라는 짧은 시간에 3과목을 전부 다 준비할 수는 없겠다는 자기합리화에 의해 설렁설렁 준비하기 시작했다. 수리 부문(Quantitative Reasoning)을 설명해주는 외국 원서를 한 권 샀고, 언어 부문(Verbal Reasoning)을 위한 단어집 한 권을 샀다. 작문 부문(Analytical Writing)은 인터넷에 다양한 기출문제가 있었기에 노트북만 들고 가면 됐다. 책 두권과 노트북 그리고 입대 4일 전의 시험 일정. 야호! 카페나 독서실에 공부하러 갈 구실이 생겼다. 입대 전 3주간은 별 생각 없이 학창시절로 돌아간 양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시험은 집에서 컴퓨터와 카메라를 이용해 실시하는 Home Testing을 이용했다. 시험의 세부내용이나 Home Testing에 대한 정보는 구글이나 유튜브에 많으니 넘어가고, 1개월간 준비한 시험 성적을 보면 참 무난했다. 대부분은 단어 외우는데 시간을 할애했지만, 내가 단어를 쓱 보면 바로 외우는 천재는 아닌지라 한 달 동안 암기할 수 있는 단어 수가 그리 많진 않았다. 신기한건 글쓰기의 경우 시험 전 2~3번 정도만 연습했는데 굉장한 고득점이 나온 편이었다. 글 쓰는걸 좋아해서 그런가.

그래서 입대 전 한달 간의 GRE 준비는 지금 내게 무슨 도움이 되었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아무 쓸모도 없을 것 같다. 단순히 내가 받은 점수가 여느 대학원 지원에 있어서 이렇다 할 힘을 실어주지 못할 뿐만은 아니다. 입대 전에는 시간을 주로 혼자 보냈고, 거기에 추가로 효과적으로 시간을 보내자며 자발적으로 독서실에서 GRE 공부를 하기 시작하자 내게 창업이라는 궁극적이지만 추상적인지라 당장에 무언가를 할 수가 없는 목표에 추진력이나 동기를 얻기가 힘들었다. GRE 공부는 대학원 진학이라는, 내 인생에 있어서 좋아하는 일(창업이나 여행, 자유롭게 사는 삶?)에서 탈선했을 때 플랜 B로써나 활용 가능한, 일종의 도피처적인 결정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깨달음은 육군훈련소에서의 5주가 큰 역할을 했다.

<2022. 01. 08>

2. What I have been doing here…

계속해서 디지털 해독제(Digital Detox)나 여행의 속도, 스마트폰을 언급하는 이유는 육군훈련소에서의 5주가 주관적인 생각과 아이디어 생성을 저해시키는 스마트폰의 존재에서 잠시 떨어지게 하고 같은 훈련소 동기들간의 생각 및 감정 교류를 증진시켰기 때문이다. 개개인의 일상에서 ‘하루 동안 스마트폰 안쓰기’ 정도의 디지털 해독 운동은 비교적 시행하기 쉽고 이미 규칙적으로 스마트폰을 멀리하며 주말을 보낸다는 등의 루틴을 가진 사람들이야 많을 것이다. 하지만 훈련소라는 특수한 공간 – 모두가 핸드폰이 없어 얼굴을 마주보고 대화를 해야만 하며 더구나 넘쳐나는게 시간이라 대화를 해야만 하는 공간 – 은 느낌이 크게 다르다. 스마트폰과 인터넷은 인간 삶에 무한한 정보의 힘을 더해주려고 설계됐지만(구글의 모토가 이것이다), 오히려 오락거리로 인해 정보의 탐색을 제한한다. 스마트폰을 잠시 뒤짚어놓고 인생 계획이나 목표에 대한 명상에 빠진다 한들 외부로부터 오는 새로운 관점의 전환이나 충격요법이나 동기부여와 같은 힘을 기대하기는 힘들다(이것이 내가 지난 3년동안 내 자신과의 대화로 인해 진정한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한 이유인것 같기도 하다). 나만 스마트폰의 전원을 끄면 무슨 소용이랴. 친구며 가족이며 모두가 스마트폰 없는 대화에 임하지 않는 한 진정한 대화의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훈련소 동기들과 함께 보내는 생활과 인간적인 대화들, 그리고 가끔은 사뭇 진지하며 열정적인 서로의 미래 비전에 대한 토의는 내게 교과서적으로만 다가왔던 ‘인간관계나 대화의 중요성’을 실증적으로 증명해주었다. 우선, 당연한거겠지만 같이 생활한 동기들이 너무 좋았다. 우리 생활관에는 나를 제외한 어학병 동기들 2명, 한 두 차례 사업을 해본 경험이 있는 분대장 맏 형, 그리고 이 형을 절대적으로 잘 따라주던 나머지 동기들을 포함해 총 13명이 있었다. 계속해서 연락할 것이라 기대되는 어학병 동기들과 그 외 생활관 동기들 1~2명도 비슷한 취향대나 성향 등 서로 통하는 바가 많아 좋았지만, 앞서 언급한 분대장 맏 형이 내게 엄청난 동기부여와 가르침을 주었다. 이것들은 남들이 보기에 새롭거나 중요해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들이 강연을 듣던, 유튜브로 동기부여 영상을 보던간에 그러한 가르침들은 항상 혁신적이지도, 내게 딱 맞는 것이 아닌 경우도 많다.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것일지라도, 누구한테와 어떤 상황에서 조언을 듣는가, 그리고 궁극적으로 해당 조언이 나라는 사람과 잘 맞는지의 여부가 그것을 특별하게 만드는게 아닐까.

첫번째는 학력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GRE를 준비한 이유 뿐만 아니라 내 블로그의 앞선 글들을 읽으면 가끔 애처로운 학력에 대한 컴플렉스나 피해망상이 보인다. ‘어차피 유학을 갈꺼, 애매한 학교에서 편입을 할게 아니라 애초에 외국 대학 입시 시험을 쳤어야 했다’와 같은 맥락이다. 좋은 학교라는 이름값과 졸업장이 필요했다기보다, 좀 더 수준높은 동기들과 함께 공부해보고 싶은 마음, 동아리나 대회 등 부속 활동에 매진해보고 싶은 마음, 그리고 창업 등 나의 진로와 마음이 맞는 친구들을 사귀고 싶은 마음이 늘 아쉬움으로 남아있었다. 훈련소에서 만난 이 형은 자존감이 하늘을 찌를 듯 했다. 나도 남들보다 대학을 빨리 가고 여타 다양한 경험을 해본 입장으로서 자존감이 높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진정한 자존감이란 자신이 밑바닥까지 내려앉았을 때 혹은 누군가에게 모욕을 당했을 때야 비로소 드러나는 것 같다. 지금 당장 하는 일들이 어려움 없이 잘 풀리고 있을 때 자존감을 운운해봐야 무슨 소용이겠는가. 돌아갈 데 없는 벼랑 끝에 내몰렸을 때 자존감이 있는 사람은 벼랑 밑으로 뛰어내리거나 쫓아온 맹수들에게 용감히 맞선다. 그리고 이것은 ‘무식하면 용감하더라’식이 아니라, 그는 자신이 어떻게든 위기를 타파할 수 있음을 알기에 그러한 결정을 내리리라. 삶과 죽음의 문턱에 가거나 빈털터리가 될 뻔한 경험이 없는 나름 평탄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할지라도 삶은 언제나 벼랑 끝에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오갈 곳이 없는 것처럼, 무수한 선택의 순간에서 후회할 길은 없다. 고등학교 자퇴, 싱가포르로의 유학, 1학년부터 다시 시작하는 떳떳한 과정이 아닌 2학년으로의 편입 결정 등 내가 선택한 결정들을 후회해서야 무슨 소용이겠는가. 진정 자기 자신의 꿈을 그 무엇과도 교환하지 않고 좇을 수 있는 사람은 자기가 빈털터리가 되더라도 자존감과 열정을 잃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훈련소에서 만난 이 형도 자기 나름의 아쉬움을 가지고 있었다. 나랑 비슷한 맥락에서였다. 물론 나이 차이가 있지만 형은 그러한 아쉬움을 자존감으로 극복했다. ‘일단 해보자’는 마인드, 외향적이며 주변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언변술과 예의바름, 그리고 결정적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일과 자신의 현재 위치, 그릇의 크기를 정확히 알고 인정하는 태도(이것은 자존감이 높아야만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쓰다보니 위의 ‘극복’이라는 표현은 이 형에게 맞지 않는 것 같다. 형은 오히려 남들보다 불리한 학력이나 인맥 등의 마이너스 요소들을 ‘극복’하기보다 ‘기회’로 삼고 이를 정확히 활용했다. 당신은 명문 A대학생이어서 A대학교의 끈끈한 인맥을 쉽게 얻을 수 있다면, 나는 제3자로서 A, B, C, D… 대학교에 이르는 광범위한 인맥을 만들었다는 식이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불리함을 극복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하나의 기회로 받아들인다.

두번째는 인간관계술과 처세술은 현대 사회에서 필수라는 것이다. SNS, 모바일게임, 맛집탐험 등 20대가 즐기는 문화들을 대중성에 의거해 주류 문화와 비주류 문화로 나눈다면, 나는 항상 비주류 계층에 속한다고 생각해왔다. 누구나 내 일상을 엿볼 수 있는 SNS 보다는 이렇게 혼자서 생각을 정리하는 블로그가 나에게는 더 맞았다. 친구들과 PC방에 가서 가끔씩 즐기는 온라인 게임보다는 방해받지 않고 혼자서 즐기는 전략 게임이 더 좋았다. 나 자신을 일종의 아웃싸이더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집에서 혼자 있기를 더 좋아하는 내향적인 사람들은 누구나 한번씩 ‘어차피 5년 뒤면 안볼 사인데 왜 불필요한 인간관계에 힘과 돈을 써야 하나’라고 생각한 적이 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런 식으로 자기합리화를 숱하게 했었으니까. 훈련소에 입소하고 처음 몇일 동안은 예상했던 대로 소위 ‘인싸’와 ‘아싸’ 무리가 있었고, 동기 13명 모두와 친해지는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동기들 대부분이 좋아하는 아이돌이나, K팝이나, 드라마를 안좋아하고 거의 모르기 때문이었다. 비슷한 맥락으로 훈련소의 이 형은 우리와 나이대도 다르고 살아온 스타일도 크게 달랐기에 우리들이 떠들던 각종 게임이나 밈(meme) 얘기에는 접점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그 형은 특유의 상대방을 편하게 해주는 언변과 자신이 모르고 좋아하지도 않는 분야를 기꺼히 알아가려고 하는 열정을 통해 우리들을 모두 통합시켰다. 나 또한 평소라면 그런 집단에서 나와 마음이 통하는 1~2명 하고만 친해졌을 것이다. 하지만 이 형은 내 진로(창업)에 대한 조언 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과의 소통과 이해(이는 창업 과정에서도 특히 중요한 것이기도 하다)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핵심적인 교훈은 ‘나와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자’가 아니라 ‘다르다고 보일지라도 사귀다보면 우연히 나와 맞는 부분을 찾거나 새로운 기회로 이어질 수 있다’였다. 당연히 성인군자처럼 열이면 열 모든게 다른 부류의 사람과 나를 억지로 끼워맞출 필요는 없다. 하지만 상대방의 첫인상이 정말 낯선 부류고 나와 맞지 않을 것 같은 이미지여도 같이 시간을 보내다 보면 신기하리만치 가까워진 경우도 많다. 생각해보라. 현재는 나와 정말 친한 친구들도 첫인상은 딱히 기억에 남지 않았거나 오히려 안좋았던 경우가 종종 있다. 이는 역설적인 교훈으로 이어진다. 그만큼 첫인상이 중요하므로 새로운 집단에서 ‘내’가 어떻게 보여질지 고심해야 한다는 것과 ‘상대방’의 첫인상이 얼마나 독특하던간에 그 이면에 숨겨진 가능성을 무시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나는 사람을 두루두루 사귀는 스타일이 아닌지라 그 동안 나와 맞지 않아보여 일부로 피했던 상황이 얼마나 많았던가.

마지막으로 세번째는, 나의 인생 목표와 관련해서 무조건 제대를 하자마자 어떻게든 창업을 시작해보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실제로 계란의 바위치기식 전략이다. 나는 창업에 대한 열정이 있고, 당장의 창업에 대한 기회비용이 적다. 나이가 어리니 1~2년 정도 아무런 창업을 도전해도 잃을게 크지 않다는 얘기다. ‘계란의 바위치기’, 비슷한 의미로 3년 전 창업을 생각했을 때부터 처참하게 실패하더라도 일단은 도전해보자고 계속해서 생각해왔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고등학교 친구들이나 대학교 동기들 등 주변 사람들의 진로나 생각을 들어오면서 ‘나만 이렇게 과감한 결정을 내려도 될까?’, ‘뒤쳐지지 않을까?’와 같은 걱정들 때문에 창업 열정이 번번히 꺾였던 것이다. 그 걱정 중 하나가 학력으로부터 시작되어 창업을 같이 하거나 아이디어를 공유할 인맥이 좁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위의 두 조언과 실제로 나와 비슷한 처지에서 창업을 해본 이 형의 동기부여로 인해 생각이 달라졌다. 형이 해준 다양한 얘기들이 있었지만 내게 필요했던 핵심적인 결론은 부족한 인맥이야 주변에서 어떻게든 찾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위에서 잠깐 한 얘기처럼, 내가 명문대생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어떻게든 내가 그에 걸맞는 가치 있는 사람이 되면 오히려 더 넓은 네트워크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에는 상세한 조언이 뒤따랐다. 사업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서로 보완할 사람들을 모아 일종의 크루나 클럽하우스를 만들라는 것. 이 형은 창업이던 아니면 다른 활동이던 간에 주위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 널려 있다. 원체 외향적인 성격이지만 외부 경험이나 활동의 수를 따져보면 나도 적지는 않다. 짧게 사귄 사람들이었지만 중학생때부터 시작해 아일랜드, 캐나다, 싱가포르, 영국에까지 살아봤으며 이 나라들 모두 한인 커뮤니티가 클 뿐만 아니라 학교 친구들이나 지금은 헤어진 전 여자친구가 소개시켜준 다양한 나라 사람들이 허다했다. 차이점은 무엇이었을까? 일단 외향과 내향성의 차이로 자신이 진취적으로 사람을 사귀려고 하는가의 여부도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지금까지는 내가 시야를 너무 좁게 보고있었다는 생각이 크다. 창업을 같이 하거나 아이디어를 공유할 사람들이야 나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지인들 중에는 딱히 걸맞는 사람이 없을지라도, 그들이 아는 사람들, 즉 지인의 지인이나 그 이상으로 시야를 확장하면 내가 필요한 사람 거의 누구든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 형이 인맥을 확장하고 창업을 성공적으로 시작했고, 그 다음의 진로까지도 걱정 없이 바라볼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이런 적극성과 관점의 차이에서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훈련소에서의 5주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재밌는 경험을 했다는 것을 차치하고, 내면적으로도 큰 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글이 길어지니 이번 글은 이쯤에서 마무리하겠다. 지금은 국방부 내에 있는 부대에 배치된지 막 2주째가 지나간다. 다음 글에서는 내가 배치된 자대에 대한 얘기와, 오늘 올리는 창업 관련 조언에 대한 실제적인 실천방안, 그리고 입대 후 감명 깊게 읽었던 책들에 대해 얘기해보겠다.

<2022. 0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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