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ry much nothing

일본 불매운동에 관한 꼬마 논문 쓰기

대학 졸업반인 3학년에는 20학점짜리 논문 프로젝트가 있다.
대부분의 기존 과목들이 10학점에 2500자 짜리 에세이를 쓰던 걸 생각하면, 5000자 짜리 “꼬마 논문”은 나름 바쁜 졸업 시즌의 합리적인 절충안이었다.

꼬마 논문인 이유는 주제 선정이 단순한 에세이도 아니고 ‘논문 급’, 즉 문헌 검토 과정을 거쳐 최소한 신선하고 새로운 분야를 조사해야 하는데 글자 수 제한은 턱 없이 부족한 5000자 밖에 안되기 때문이다. 논문 지도교수와 첫 면담을 가졌을 때, 솔직히 많은 준비는 하지 않았다 (솔직히 그냥 형식적인 인사만 할 줄 알았음). 그마저도 친구 중 한명이 논문 주제 리스트나 최소한 내가 하고 싶은 것이라도 생각하라는 조언에 첫 면담 2시간 전쯤 부터 재밌는 주제나 있나 하고 네이버를 기웃거렸다. 딱 그때 눈에 띄던게 내가 예전부터 관심이 있었던 공유경제와 네이버 기사 한 칸을 장식하던 반일 불매운동의 실황 같은 것이었다. 면담이 시작되고, 나중에야 알게됐지만 상당히 호의적이고 친근했다는 그 친구의 영국계 지도교수와는 달리, 내 지도교수는 비교적 딱딱하고 형식적인 스타일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중동쪽인듯 하지만 인종차별 할 생각은 없다). 스트레잇 투 더 포인트로 주제에 대해서 생각해온 것이 있냐고 묻길래, 나는 얼버무리면서 공유경제와 불매운동에 관한 배경을 대강 설명했다. 이 첫 면담에서 주제를 결정하진 않았지만 이어지는 메일 답신에서는 둘 중 하나로 정하라는 눈치였고 나는 일본 불매운동을 주제로 선택했다.

불매운동을 선택한 이유는 내가 직접 사람들에게 설문조사를 실시해 그럴 듯한 통계치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논문 진행 방식에는 3가지 – 양적 연구, 질적 연구, 조직적 문헌 검토 – 가 있는데, 내가 볼 때 우리 기수들은 이 비율이 3:5:2 정도 되는 것 같았다. 많은 애들이 인터뷰야 어느 정도 조작이 가능하지 않을까, 혹은 경우에 따라서 3~5명 정도의 사람들만 인터뷰 해도 충분하기 때문에 질적 연구를 선택한 것 같다. 주제에 따라 다르겠지만, 인터뷰를 실시해도 통계 분석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기에 힘든건 매한가지 같다.


주제

7월 말 부터 쓰기 시작했으니 못해도 4개월은 된 것 같다. 구체적으로 내가 고른 주제는 “불매운동의 더욱 긴 참여를 유발하는 요인들은 무엇일까” 였는데, 첫번째로 내가 하고자 했던 설문조사와 통계적 결론을 내리기가 가능했고, 문헌 검토를 하며 알게된 사실인데 반일 불매운동이라는 특정한 맥락 뿐만 아니라 불매운동의 ‘시간적’ 요소를 고려한 조사나 논문들이 없었다. 대부분의 논문들은 소비자 행동 이론에 기초해서 ‘불매운동의 초기 참여’를 이끌어 내는 요인들을 분석했다. 대표적으로 불매운동의 동기와 비용, 도덕적 가치관이나 원산지역효과(country of origin effect)와 같은 소비적 편향들이 개인들의 “높은” 혹은 “낮은” 확률의 불매운동 참여와 관련이 있었다. 여기서 내가 하고자 했던 것은 시간적 요인(temporal factor)를 도입해서, 그러한 요인들이 불매운동의 “긴” 혹은 “짧은” 참여와도 관련이 있는 지를 조사하고 싶었다. 머릿 속으로 시뮬레이션을 굴려본 끝에 나름 주제도 신선하고, 설문조사를 실시하기 전이라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몰랐지만 실제로 관계도 있을 것 같았다. 가령, 불매운동의 동기가 높은 사람, 예를 들어 내가 불매운동 대상에 대해 정말 화가 나서 무슨 일이 있어도 특정 제품은 소비하지 않겠다는 사람은, 당연히 불매운동의 참여 확률이 높을 뿐만 아니라 더 오래 참여하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실용성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불매운동이라는 주제는 소비자 및 생산자 측 모두에게서 관심을 받는 이슈일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불매운동에 더 오래 참여해야 일종의 ‘성공 확률’이 높던지 불매운동 대상에게 더욱 강력한 영향을 미칠 수 있기에 시간적 요소를 분석하는 것은 중요해 보였다.

진행사항

어찌 됐든, 저렇게 주제를 정했고, 정확히 두 달 후가 제출 기한이기 때문에 수업과 다른 수업의 과제들 중에 짬을 내서 ‘제발 제출기한 전에 여유롭게 제출해보자’고 노력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와는 달리 교수들은 크리스마스와 신년이 있는 12~1월에 거의 반을 쉬다시피 하기 때문에 좀 더 속력을 내야 되기도 한다. 내가 구성한 꼬마 논문의 구조는 여타 다른 일반적인 것들 처럼, 인트로 – 문헌 검토 – 연구 방법 – 연구 결과 – 논의 – 실용 방안 – 결론, 순서대로 진행해 가고 있는데, 현재는 연구 방법까지 썼고 이번주 주말 부터 설문지 결과나 SPSS로 분석을 시작할 예정이다. 두번째 면담에서 내가 자신 있게 설문지 조사를 하겠다는 말에 지도교수는 약간의 반색을 표했는데, ‘최소 100~200명은 모아야 되는데 과연 니가 가능할까?’는 우려였다. 나는 대략 100~150명 정도는 모을 수 있다고 확신을 줬고 (별로 확신을 주기는 싫었지만), 현재 조사는 거의 마쳤는데 총 125명의 응답자를 모았다. 다른 과제가 있어 진행이 조금 쉬쉬해지기는 했지만 SPSS를 대략적으로 돌려보니 결과도 꽤 만족스러운게, 이제부터 뭔가 꼬일 일은 없을 것 같다.

그런데 굉장히 짜증나는 게 있는데, 이 XXXX.. 교수님이 망할 이메일 답장을 안준다. 10월 중순에 설문조사를 실시하겠다는 이메일을 보냈는데 답장이 없었고, 어쩔 수 없이 그냥 설문지를 뿌린 후 10월 말에 다시 연락을 했는데 감감 무소식. 이제 거의 한 달 째라 엊그제 연구 방법 파트에 피드백좀 달라고 이메일을 보냈는데 제발 답장좀 해주면 좋겠다. 정 안되면 학교 측에 연락을 넣는 것도 있긴 한데 뭔가 그 방법은 영 쓰기 싫달까. 논문 프로젝트 라는게, 1, 2학년에서 읽어왔던 논문들을 내가 지어본다는 기념비적 의미도 있고, 내가 하고 싶은 주제로 조사를 해본다는 의미도 있지만, 그래도 20학점이나 하는데 점수라도 녹록치 않게 받아야 될거 아닌가. 그런데 대충 들은 바로는 지도교수가 1차 채점을, 그리고 또 다른 채점인이 2차 채점을 해준다는 소식에, 뭔가 교수를 더 귀찮게 굴거나 짜증나게 만들면 안될거 같다는 무언의 압력이 느껴진다. 몇 가지 추측은 휴가를 갔거나, 전부터 예상했던 건데 우리는 학사 과정이다 보니까 이런 논문 프로젝트 따위가 진짜 학술 논문으로 출간될 것도 아니라 검수를 봐주는 데 은근한 귀찮음이 있어서 답장을 늦추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진짜 까먹고 답장을 안한 거였으면..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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