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우리들」- 예브게니 이바노비치 자먀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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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1 Singapore #2

“인간의 자유가 0이라면 인간은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다. 명백하게도, 인간을 범죄에서 구원하는 유일한 수단은 그를 자유에서 구제해 주는 길밖에 없다.” ⌈우리들⌋

우리는 우리가 바라는 완벽한 세상-그것을 이상향이라 부르든, 유토피아라 칭하든 간에-을 항상 상상해 왔다. 모든 사람들이 만족할 만한 완벽한 세상은 존재할까? 디스토피아 소설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20세기 초반은 산업 혁명과 수송 수단의 기약적인 발전으로, 사람 개인이나 국가에 있어서 물질적인 발달이 인식적인 영역보다 몇 발자국은 앞서 있었다. 태평양 조그만 섬으로부터의 약탈은 진귀한 보석과 노예들이라는 물질적인 즐거움에 가려져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올바른 행동이였는지 따위의 논제들은 힘을 잃고 있었다. 민족주의와 제국주의-게르만 민족 외에는 모두 열등하다던 나치의 유태인 학살과 모두가 국가 아래서 공평하다던 소련의 공산주의가 오늘 날까지 지속됐다면 그것은 이상적인 세계로서 보여져 왔을까? 백년 전 그러한 잔혹한 행위들은 그들의 생각 범위 안에서는 완벽한 유토피아를 추구하려는 위대한 시도였다.

⌈우리들⌋을 포함한 디스토피아 소설들은 따라서 역설적인 소설의 배경을 통해 20세기 당시 만연하던 전체주의, 제국주의, 민족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등의 체제를 비판한다. 역설적인 소설의 배경이란 위의 나치와 소련의 예시에서 드러났듯이, 소설이 전개되는 배경은 표면적으로 ‘범죄 없는 세상’, ‘모두가 평등한 세상’ 같이 미래의 유토피아를 드러내는 것 같지만 사실은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통제하는 아이러니함을 의미한다. 즉, 자먀찐을 포함한 계몽가들은 민족주의나 공산주의와 같이 당시에는 완벽하다고 받아들여지는 사회 체제가 가질 수 있는 극단적인 미래의 디스토피아를 소설로 그려낸 것이다. 자먀찐이 생각한 미래의 디스토피아 세상은 어떠했을까? 우리는 그가 살았던 20세기 초반의 세계 정세-1차 세계대전과 소련 건국-을 생각하면서 ⌈우리들⌋을 읽어보자.

「우리들」- 예브게니 이바노비치 자먀찐

소설은 인류 문명이 발전한 29세기의 돔 안 도시를 배경으로 한다. 소설의 이야기가 전개되는 이 전체 배경에 대해서 뚜렷한 묘사는 나와있지 않지만, 드넓은 푸릇푸릇한 자연으로 이루어진 돔 밖의 세상과 ‘은혜로운 분’의 통치 아래서 각자의 번호를 부여받고 단체 생활하는 돔 안의 세상으로 배경이 나눠지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주인공 D-503이 하루 중 주어진 자유 시간에 일기 형식으로 사건을 서술한 총 40개의 기록으로 소설이 구성된다. 주인공은 자신이 이러한 기록을 하는 이유가 으레 사람들이 글을 쓰는 이유가 훗날 다른 사람들이 글을 읽어주기를 바램에서가 아니라 특이하게도 과거에 살았던, 즉 우리들을 위해 기록한다고 밝힌다. 이러한 소설의 구성이 흥미로운 점은 개인의 자유가 철저히 억압된 사회에 적응된 주인공이 ‘개개인이 자유롭던 과거 사회의 사람들은 얼마나 불행했을까’라는 식으로 유리 돔 안에 갖힌 자신들의 삶을 다행스럽게 여기는 주인공의 세뇌된 생각 체계를 들여다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소설이 디스토피아적 통제된 세상을 다룬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주인공 입장의 일기적 구성은 실제로 먼 훗날에 유리 돔 아래의 세상이 펼쳐지지는 않을까 하는 현실적인 두려움을 불러 일으킨다.

유리 돔 아래서의 삶은 평화롭고, 질서정연하며 아름답다. D-503, I-330 등의 번호를 부여받은 시민들은 단일제국이 정한 규칙과 ‘시간 율법표’ 대로 일하고 먹고 자며 심지어 성관계조차 조율당한다. 주인공 D-503은 본래 일반 시민들과 다르지 않은 사상을 가지고 있던, 통제하는 정부 입장에서는 별 탈을 일으키지 않던 완벽한 시민이었다. 그는 단일제국에서 만드는 우주선 ‘인쩨그랄’의 정비사로 일하며 O-90이라는 여성과 주기적으로 행복하게 만나고 있었다. 그러던 주인공은 갑작스럽게 I-330이라는 신비한 여성을 만난다. 이 여성은 주인공이 지금껏 교류한 다른 어떤 시민들과는 달랐다. 여타 다른 시민들은 자기 주관 없이 머릿속이 텅 빈 채로 당국의 꼭두각시 노릇이나 하고 있었던 반면 이 I-330이라는 여자는 생각을 자세히 들여다봐도 읽을 수가 없는, 미스테리한 존재로 다가왔다. 주인공은 평범하지 않은 사고를 하는 그리고 교묘하게 과거 사람들의 자유로움을 통해 자신을 유혹하는 이 여성에게 휘둘리기 시작한다. 단일한 사고와 정해진 규칙 속에 익숙해진 주인공에게 단란함을 깨버린 이 여성의 존재는 성가시다. 그의 머릿속은 일생 동안 한치의 오차도 벗어나 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언제나 은혜로운 분을 떠받들며 그 아래서 다 같이, 마치 사람들이 하나의 거대한 기계를 이루며 바삐 돌아가는 삶. 그러한 삶 속에 자신의 존재에 대한 회의감에 잠기거나 복잡한 인간관계의 본질을 사색할 따위의 동기가 있었을까? 주인공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저 거대하고 강력한 단일체의 한 부분으로서 나 자신을 인식한다. 그토록 정확한 아름다움이 또 있을까. 단 하나의 몸짓도, 굴곡도, 회전도 불필요한 것이 없다.”

“그들의 목소리를 고려한다는 것은 콘서트홀에 우연히 참석한 환자의 기침을 화려하고 영웅적인 교향곡의 일부로 간주하는 것과 똑같이 어리석은 짓이다.”

‘거대하고 강력한 단일체’는 유리 돔 아래 서로가 유기적으로 뒤얽혀 하나의 기계처럼 돌아가는 그들의 아름다운 삶을 비유한다. 그러나 그러한 뒤얽힘은 개인적 사고나 행동을 제한한다. 단일체가 ‘몸짓도, 굴곡도, 회전도 불필요한 것이 없게끔 돌아가기 위해서는 개개인의 행동과 생각을 통제하는 ‘은혜로운 분’의 존재가 필연적이다. 또한 비슷한 맥락으로 주인공은 기침과 교향곡을 언급한다. 화려하고 영웅적인 교향곡-연주자와 지휘자 그리고 무대 뒤 기술자들의 몸짓과 굴곡, 회전 하나하나는 위대한 교향곡을 재현하는데 하나도 불필요한 것이 없다. 그런데 연주회에 참석한 한 사람의 기침 소리가 그 완벽한 교향곡의 일부가 되어야 할까? 이러한 비유들은 소설 안 주인공 D-503의 사고방식을 극적으로 드러낸다.

dome<영화 ‘심슨 가족 더 무비’에서 오염을 막기 위해 스프링필드에 거대한 돔을 치는 모습>

“낙원에서 가능한 선택은 두 가지밖에 없었어. 자유가 없는 행복이냐, 아니면 행복 없는 자유냐였어. 세 번째는 없었네. 저들, 바보들은 자유를 선택했어. 그리고 이해하겠지만 그들은 그 뒤 몇 세기 동안 구속을 갈구했지. 구속을 말일세.”

소설 상 유리 돔 안 도시의 통치 조직인 단일제국은 완전한 비자유의 행복이냐, 완전한 비행복의 자유냐를 두고 개개인의 모든 자유를 억압하고 전체 집단의 행복을 추구하는 방향을 택했다. 자유와 행복의 완전한 등가 관계, 이러한 이분법은 그다지 현실적으로 다가오지는 않지만 100여년 전 급속도로 퍼진, 집단의 이익을 추구하자는 민족주의와 공산주의의 물결을 꼬집기에는 안성맞춤이다. 애초에 이러한 극단성이-완전한 비자유의 행복은 이러한 디스토피아적 소설에서, 완전한 비행복의 자유는 무정부적인 사회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현실에서 실현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사람들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모두가 행복한 유토피아를 건설한다는 것은 자명하게 모순되며 이러한 모순을 ⌈우리들⌋에서는 <단일제국>의 형태로, 그리고 넓게는 <디스토피아>라는 대명사로서 모순을 설명한다고 볼 수 있겠다.

다시 소설의 내용으로 돌아오자. 때는 29세기, 주인공의 할아버지 뻘 되는 세대들 또한 단일제국 아래서 똑같이 행동하고 생각하도록 훈련받았을 것이다. 낯선 여자 I-330을 만난 뒤 주인공은 이렇게 단일제국에 의해 교육된 사상과 이 여자가 가져온 20세기적 자유로운 사상이 내적에서 충돌한다. 낯선 여자는 당시 유리 돔 한 가장자리에 박물관의 형태로 보존되어 있던 과거의 아파트로 주인공을 부른다. 아직 그의 사상은 단일제국에서 주입한 그대로였기에 주인공은 낯선 여자의 그러한 탈선행위를 보안국에 고발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주인공은 지금껏 단일제국이 배정한 여자들에게서 느껴본 적 없는 새로운 감정을 낯선 여자에게서 느낀다. 단일제국은 시민들의 성욕으로부터 발생할 수 있는 집단의 파괴로부터 제국을 유지하기 위해 원초적으로 여자와 남자를 묶어주었다. 모든 구성원이 하나의 기계처럼 돌아가기 위해 규정한 의무적이고 규칙적인 성생활, 단일제국에게 있어서 집단 내의 ‘사랑’이라는 감정은 무작정 타파해야 할 제 1순위의 병균이자 ‘매끄러운 교향곡에 불순하게 첨가된 관객의 기침’같은 존재였다.

낯선 여자 I-330은 단일제국이 유지되는 그러한 구조와 미묘한 간섭에도 얼마든지 반응할 준비가 되어 있던 주인공 D-503의 단조로운 집단에서의 생활을 알고 있었나 보다. ‘사랑’ 이라는 감정을 통해서 I-330은 단일제국의 관할로부터 D-503의 주의를 돌리는 데 성공했다. 하필 하나의 명령 아래서 똑같이 움직이는 군중 속에서 D-503을 선택한 이유는 그가 우주선 ‘인쩨그랄’의 정비 담당사였기 때문이다. 여자는 <메피>라는 혁명집단을 이끌며 유리 돔 바깥으로 벗어나기를 원하고 있었고, 곧 닥칠 인쩨그랄의 시범 비행은 혁명에 필수적이었다. 이러한 혁명이 차근차근, 집단 곳곳에 기생충처럼 퍼져 있었던 혁명군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었을 때, 단일제국은 이들의 존재를 인식하고 뇌 수술을 통한 정신 개조를 실시한다. 꽤 많은 시민들, 단일제국에 의해 길들여졌던 시민들 조차 이러한 정신 개조에 반대하지만 그들이나 혁명군이나 돔 아래 ‘은혜로운 분’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없다. 결국 마지막 순간, 혁명군인 I-330에 사랑에 빠졌지만 은혜로운 분을 섬겨온 자신의 정체성을 그렇다고 한 순간에 저버릴 수도 없었던 주인공은 마침내 단일제국에 의해 정신 개조를 당하게 된다. 그리고 온순해진 주인공은 은혜로운 분과 같이 고문실에 잡혀온 I-330가 고문당하는 모습을 보며 사랑 따위의 감정은 온데 간데 사라진 뒤 그녀의 처형을 연기해서는 안되며 우리, 곧 단일제국이 승리할 것을 확신한다며 소설은 끝이 난다.

Dark foggy futuristic cityscape

정리

⌈우리들⌋은 시민들의 자유를 최대한으로 억압하고 시민들을 교묘하게 세뇌시키는 29세기 <단일제국>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세뇌된 시민 중에 하나였던 D-503이라는 주인공의 입장에서 서술한다. 1920년에 집필된 이 디스토피아 소설은 지나치게 중앙집권화된 정치 체제를 비판하고 불균형한 정보의 흐름 속에서 ‘교육’을 통해 한 사회의 가치관이 변모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유리 돔 아래 사람들은 투명한 유리를 통해 동물들이 뛰노는 푸르른 바깥 세상을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개인의 사적인 자유가 ‘은혜로운 분’에 의해 통제되고 ‘단일제국’을 위해 하나의 기계처럼 일하는 그들 자신의 삶에 별로 불만을 가지지 않는 듯 하다. 그들의 머릿 속에는 단일제국을 위해 개개인의 개인성-취미, 특기, 성격 등-을 인간성 저 한쪽 뒤 편으로 던져놓은 채 기계처럼 일한다.

유리 돔 안에 시민들을 가둬놓고 통재하는 단일제국과 은혜로운 분의 도덕성을 왈가왈부할 수는 없다. 최소한 소설에서 언급된 이야기만을 종합했을 때에는 모든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그러한 통제와 강압을 실시했다고 나와 있기 때문이다. 소설의 비극적인 결말, 허무한 느낌… 그것들을 애워싸는 ‘디스토피아적’ 요소들은 인간 사회에서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사고 체계를 변화시킴으로써 사회나 국가의 지배 체제를 유지할 수도 있다는 신선한 논점을 제기한다. 20세기까지 강한 자들은 힘이라는 무력을 통해, 혹은 특출난 지성같은 리더로서의 자질을 보여주며 사회를 지배했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은 일시적이다. 한 시대를 풍미한 전설적인 지배자는 한날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몇십년동안 일구어 왔던 국가를 잃을 수도 있었다. ⌈우리들⌋에서 보여준 단일제국의 지배 방식은 어떠한가? 그들은 사람들에게 공포를 심기 위해 소심한 반역자 몇명을 모두의 앞에서 처형시킨다던지 오늘 날의 법치주의 따위로 시민들을 다스리지 않는다. 시민들은 그저 태어남과 동시에 죽을 때까지 은혜로운 분과 단일제국의 위대함을 알고, 또 믿는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처럼 시민들을 일종의 ‘세뇌 교육’을 통해 단일 사회를 구성한다는 얘기가 ⌈우리들⌋에 직접적으로 언급되지는 않지만, 그들은 태어나면서 그들의 단일제국을 위한 임무와 조작된 역사를 배우고 또 이미 존재하는 사회가 그들에게 그러한 믿음을 강제한다. 단일제국의 규율에서 벗어나는 ‘사랑’ 따위의 사적인 감정이나 호기심 같은 쓸데 없는 생각들은 정부의 정신 개조실까지 가지 않아도 이미 세뇌된 다른 시민들에 의해 짓밝히고 묻이기 마련이다. 돔 아래의 유토피아는 우리들의 입장에서 지옥같은 디스토피아에 불과하다.

image-asset<애초에 모두가 행복한 유토피아는 ‘없는 세상’ 이라는 뜻의 Utopia의 어원처럼 존재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줄거리 세줄 요약

1. 29세기 돔 안의 ‘단일제국’, ‘은혜로운 분’의 통치 아래서 모든 시민들은 각자의 번호와 직업을 부여받고 정해진 스케쥴에 맞추어 생활함.
2. 주인공 D-503은 이러한 체제에 길들여져 자유롭게 살던 과거 사람들이 얼마나 미개하며 불쌍했을까 라는 식으로 일기를 쓰기 시작함.
3. 주인공은 갑작스럽게 I-330이라는 낯선 여자를 만나 현실적인 사랑에 빠지게 됨.
3. 이 낯선 여자는 단일제국의 억압적 통치에 반대하는 혁명파를 이끄는 사람이었지만 혁명은 실패로 끝나고 여자는 처형장으로 보내지며 주인공은 단일제국에 의해 정신이 개조되었기 때문에 사랑을 망각하고 다시 단일제국 아래 세뇌된 시민 중 하나로써 허무하게 일기를 마무리함.

뜻 세줄 요약

1. 단일제국의 시민들은 자신들이 사는 세계가 유토피아라고 믿어 의심치 않지만 우리는 독자로써 그 세계가 개인의 자유를 완전히 잃어버린 디스토피아라는 것을 앎.
2. 즉, 과거처럼 무력에 의한 지배가 아니라 교육을 통해 사람들을 세뇌시키고 정보를 조작하는 방향으로 사회가 개인의 자유를 없애는 디스토피아적 세상으로 변할 수도 있음을 시사함.
3. 소설 내에서 주인공이 낯선 여자에게 느낀 ‘사랑’ 이라는 인간적인 감정은 주인공 자신의 자유, 즉 돔 아래 인간성을 잃어버린 디스토피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매게체였음. 소설 마지막에 정신 개조를 통해 주인공이 이 사랑이라는 감정을 망각함으로써 세뇌된 사람들이라도 한 구석에 남아 있던 인간성을 모두 잃어버렸다는 것을 의미함.

 

기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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