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거 아님

달성할 수도 없는 목표를 매일 새우는 이유

정확히는 크리스마스 겸 2주간의 학교 방학으로 놀러갔던 호주 시드니에서 새로운 해를 맞이했고, 여행지에서 노느라 또는 엄습하는 걱정에 사로잡혀 있느라 개인적으로 만족스러운 새해 맞이는 아니였지만 2020년이라는 딱 떨어진 숫자가 주는 느낌은 지금까지와 사뭇 달랐다.

싱가포르에 경영을 공부하러 온 3년 전부터 나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매일마다 해야할 것 목록(To-do list)를 적곤 했다. 대략 3년, 거진 1,000일에 달하는 하루하루에 비해 핸드폰 노트에 기록된 253개의 개별 노트는 무언가 나 자신의 성실성을 전면 반박하고 있는거 같지만서도 말이다. 아니면 정말로 750일 중 대부분이 변명을 댈 수 있는 특별한 날들이였을 수도 있다.

어쨋든, 매일매일 해야할 것들을 정리하며 느껴왔던 것은 내가 정말로 하루에 다 끝내지도 못할 일들을 무리해서 할 것 리스트에 끼워넣고 있었다는 점이다. 정확히 세어보지는 않아서 모르겠지만 253개의 개별 노트 중 하루 평균 계획한 5~6개의 ‘하루 목표’ 중에서 정말로 계획했던 것을 모두 완료했던 날은 20일이 채 안될 것이라 장담한다.

언제나 입술 삐죽 나온 불만쟁이

내가 다 끝내지도 못할 양의 ‘할 것’들을 매 번, 하루도 빠짐 없이 리스트에 굳이 끼워넣었던 것은 내가 그 만큼 할 것 많고 바쁜 사람이라는 것을 알리거나 오늘 완료하지 못했던 일들로부터 ‘내일은 더 바삐 움직이자’ 같은 자기 동기부여를 주고 싶었기 때문은 아니다.

싱가포르에 오고 첫 날 ‘할 것 목록’을 만들면서, 당연히도 시작은 어디 영화에서나 나올 법 한 부류의 주인공식 성장 스토리는 아니었다. 머리로만 기억하지 말고 적는 습관을 기르라는 엄마의 말에 핸드폰 노트라는 디지털 방식으로 나름 나 자신과 타협했던 터라 그 시작은 ‘오늘 꼭 사야 할 것’과 같이 굉장히 사소하게 출발했다.

그 사소한 출발이 무리하게 거창해진 이유는 내가 참 사소한 것에도, 또 굉장히 자주 ‘무엇을 해야 겠다’고 자기 동기부여가 잘 되는 편이지만 내 실행력이 그러한 마음가짐을 따라가지 못하는 데에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일단 매일 아침 침대에서 일어난 직후든, 화장실에서 중요한 임무를 해결하는 중이든, 그 전날 밤 자기 직전이든 ‘하루 계획’을 세우면서는 ‘완벽한 하루를 살겠다’는 강력한 동기부여로 모든 것을 해내겠다는 열정을 얻는다. 그런데 사람인지라, 그게 마음대로 지속되지 않아서 문제다.

어쨋든 왜 달성할 수도 없는, 너무 많은 계획을 세우는지에 대한 기존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나는 스티브잡스의 격언으로 자리잡은 ‘항상 배고프게, 멍청하게 살아라 (“Stay hungry, Stay foolish”)’와 중학교였나, 고등학교 때 선생님이 처음 보여준 지혜로운 랍비 아브라함 트워스키(Abraham Joshua Twerski)의 ‘랍스터와 스트레스 이야기’를 가장 좋아한다.
트워스키의 의사결정 강의

어쩌면 종교적이든, 살아왔던 인생의 가치관이든 굉장히 동떨어진 두 인물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내가 추고하고자 하는 인생관과 일치한다. 간단하게 말하면 ‘항상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굶주려라’라고 할 수 있겠고 나름대로 나만의 주석을 포함시킨다면 ‘현상(狀)에 만족하지 말고 내가 이루고자 하는 바를 멀찍이 바라보며 매일같이 갈망하고, 설령 개개인의 바램이 주된 목표가 아닐지라도 더욱 더 인간다움을 위해 앞으로 나아가자’ 정도가 되겠다.

현재를 비추어 볼 때: 싱가포르

한 주 뒤면 영국으로 교환학생을 갈 예정이지만 현재 3년차에 접어든 싱가포르에 유학생활이 지루해지고 있는 이유가 단순히 변함 없는 학교 식당과 코딱지 만한 나라를 싸잡아 비난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사람 마음 자신도 잘 모른다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지루한 주변 관계에서 비롯된 허무함과 ‘예상에 못 미치는’ 지적 혹은 비즈니스적 활동으로 인해 다른 것들까지 전부 다 지루해져 가는 것 같다.

왜 이 주변에는 무언가에 열정적으로 꽃힌 사람이 없는 걸까? 현상에 ‘논리적’으로 불만족을 표현하는 사람은 없는 걸까? (물론 ‘저 교수 왜 이렇게 재미 없어’와 같은 예시는 제외다) 왜 나의 열정이나 꿈을 주변에 공개적으로 표명하는데 이상한 취급 받아야 하며 부끄러움을 느껴야 하는가? 아니, 애초에 대학이라는 곳에서 상술한 활동이 일어나지 않는게 이상하지 않는가?

아직 생일이 지나지 않았으니 국제나이로 19살, 한국 나이로 21살이니 나 자신에게 ‘꼰대’라는 타이틀을 스스로 들먹이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대답 없는 이러한 질문들이 내 답답한 마음 속을 대변해준다.

나는 한국 대학이나 여타 다른 나라의 대학을 가본 적이 없으므로 이러한 질문이 전세계적으로 통용되는지, 아니면 싱가포르에서만 혹은 범위를 더 좁혀서 하필이면 우리 학교에서만 던져볼 수 있는 물음인지는 잘 모르겠다. 당연히 나는 지성인도, 사회운동가도 아니기에 하필이면 우리 학교에만 일어나는 일로 치부하고 싶다.

경영학에서 흔히 나오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관계’가 아닌가? 우리 학교가 경영 전문이니 ‘경영’이라는 틀 안에서 개개인의 흥미와 장기의 활용이나, 최소한 그들끼리 서로서로의 발전을 위한 ‘의사소통’이 일어나지 않을 뿐더러 아무도 불만을 표시하지 않는다. 마치 조지 오웰의 1984에서 현 체제의 대한 반역자를 간단하게 처단하는 방식이 아니라 ‘개조’시켜 독재체제를 유지하는 것처럼 나도 멍청하게 중, 고등학생 때 했던 것 처럼 시험을 위한 공부만 하다가는 그들에게 동화되어 갈 것만 같다.

맞다. 사실 ‘중, 고등학생’이라는 점이 내게는 중요하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언인지 알기를 위한 일반화된 공부 과정’과 의무적이지 않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공부’하는 대학의 차이는 누구나 알고 있으니까. 많은 사람들이 대학, MBA의 존재를 ‘네트워킹’으로 규정하는 부류도 있듯이 나는 ‘경영’에 열정적인 사람들끼리의 선순환을 예상했다. 다시 말해, 내가 스타트업과 게임에 관심이 있고 너가 마케팅과 유튜버에 관심이 있으면 정보의 순환을 통해 모두가 원하는 바를 위해 발전하는 양상 – 그것이 내가 ‘기대했던’ 바도 아닌 단순히 ‘예상했던’ 바다.

그러니까 지금 내 꼬라지를 보며 자괴감이 안 생길래야 안 생길 수가 있을까.

그래서 어떻게 할건데

일단 내가 근래에 깨달았던 점과 결심했던 점은 ‘세상에 참 필요 없는 관계가 많다’라는 점이다. 개 똥도 약에 쓴다지만 그 개 똥 달인 물로 불면증이 나았는데 척추에 문제가 생겼다면 어떨까.

많은 현대 경제학 서적 – 특히 행동경제학 측면에서는 완벽한 정보와 완벽한 의사결정 능력을 가진 이코노믹스(Economics)와 감정, 분위기, 성격 등에 항상 영향을 받는 개개인에 대한 비교가 강조된다. 과거의 많은 경제 원리들은 사람들이 어떤 상황 속에서도 개인의 최대 이익을 위해 논리적으로 생각할 것이라는데 모든 가정을 두었던 반면에 현대에 들어 심리학, 사회학, 생리학적 관점에서 현실적인 경제 활동을 해석하는 책들이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를 도입하면 즉, 어느 인간관계든, 설령 그리 도움이나 이익을 얻지 못할 인간관계 일지라도 일단 쓸 데가 있다는 구전과는 달리 이코노믹스의 관점에서 내가 얻는 것 보다 잃거나 잃을 것 같은게 많을 때는 최소한 그 인관관계를 최소화하는 게 맞지 않겠는가.

모두가 (대부분) 열정적이고 공부를 잘 하는 고등학교의 완벽한 공부 중심 분위기를 바탕으로 대입을 준비하느냐, 아니면 완전 노는 분위기의 고등학교 속에서 유혹을 이겨내고 더 쉽게 성공하느냐의 차이인 것 같다. 뭐, ‘성공하는 것’의 여부는 당연히 명문대학을 나온 사람에게 유리하니 현실에는 조금… 아니면 많이 다르게 적용될 수도 있겠다.

정리하자면, 내가 어떻게 할 것이냐면, 앞서 말한대로 ‘꽤 필요 없는 관계’들을 최소화하거나 정리할 생각이다. 당연히 그러한 인간관계 일지라도 쓸모가 있기는 마련이니 여건이나 능력이 되는 사람이면은 이러한 결단을 내릴 필요가 없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서는, 내가 멀티테스킹이 잘 안되는 사람이라 그런지, 도저히 인간관계에 불만족이나 문제가 있어서는 다른 더 중요한 일에 완전히 몰두할 수가 없다.

이번 기회를 뼈 아프지만 더 나아가는 성장의 발판으로 삼아졌으면 좋겠다. 나야 유학을 고등학교 1학년이 되서야 왔으니 외국에서 공부하고 산 기간이 한국에 있었던 시간에 비해서는 턱도 없다. 특히 중, 고등학교 때 만난 친구 모임 하나에서만 그나마 활동적으로 근황도 나누고 자주 만나보는 편인데 (비행기 타고..), 고등학교 1학년을 자퇴하고 지금까지 그러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 자퇴하기 전에는 친한 관계였으니 연락이 끊기지는 않았으나 나머지 2년을 같이 학교생활하고 대학을 가서도 서로 자주 만나는 그들과 내가 그 당시 만큼 가깝지는 않을 것이다. 고등학교 때의, 그 당시에는 소중했던 친구들을 대부분 보내고 싱가포르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난 것처럼 이번에는 내 자의로 기존의 인간관계를 조금 정리하고 더 나은 사람들을 만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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