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되돌아보는 요즘

Vol.4 가을; 대학 생활 마지막과 어학병 입대 D-30

대학 생활의 정말 마지막과 어학병 시험 합격
September 26th, 2021

여름은 빠르게 지나갔다. 이번 여름에는 두 가지 일이 있었다. 첫번째는 학교의 마지막 과제였고, 두번째는 어학병 시험이었다. 학교 과제는 연초에 했던 인턴쉽에 관한 것이었는데, 한국의 회사 생활에 대한 내 경험을 토대로 기업에서 다문화적 이슈를 어떻게 다룰지에 관한 에세이였다. 진부하고 지난 2년 동안 질리도록 듣던 주제였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온 성적을 계산해본 결과 웃기게도 이 에세이에서 무조건 70점 이상(=A)을 맞아야 전체 성적이 딱 70점이라 First class로 졸업할 수 있었다. 몇몇 학생들의 시간이 부족하다는 항의에 제출 마감일자가 한 달여간 늦춰지긴 했지만 늘어난 시간만큼 더 완벽하게 쓰고 싶어 스트레스를 좀 받았던 것 같다.

어학병 시험도 마찬가지로 한 달이 미뤄졌다. 7월, 인턴이 끝난 시점부터 나는 회사에서 만났던 인턴 동기 형과 일주일에 한번씩 어학병 스터디를 했다. 웃기게도 시험이 2주 남아 잔뜩 긴장하던 시점에, 형과 같이 스터디를 하러 만났었던 때 병무청에서 전화가 왔었다. 코로나 이슈였다. 우리는 한바탕 허무한 웃음을 터뜨린 후, 나는 늘어난 기간동안 제대로 실력을 늘려올 것이라 다짐했다. 전반적으로 시험 준비는 나름 재밌었던 것 같다. 통역 시험이라는 특성 상 혼자 아무리 준비해봐야 남과 주고 받는 과정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육군 어학병으로 제대 했던 인턴 동기 형에게 좋은 피드백을 받고, 거의 매일 다른 대학 동기 형과 화상 통역 연습을 해서 105명 어학병 TO의 끝자락이라도 붙었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어학병 키워드로 시험에 대한 팁을 위해 블로그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있을까봐 미리 경고하자면 필자는 외국에 오래 살지도, 영어가 술술 나오지도, 시험을 고득점으로 통과하지도 않았기에(52등 했다) 그냥 지나가는 글로 읽어줬으면 한다. 나는 주로 연습을 암기와 듣기 위주로 했었다. 첫번째로, 유연한 영어 표현은 둘째치고 처음 통역 연습을 해보면서 한국말로 나오는 음성 조차 다시 복기해보면 아리송한 부분이 너무 많아서 최소한 들은 내용을 완벽하게 잡아내고자 하는 욕구가 컸다. 두번째로, 시험을 준비하면서 사람들이 되게 긴 지문(4문장 이상)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한 뒤로 공포감에 되든 안되든 최대한 긴 문단으로 통역 연습을 했다. 결과를 바로 말하자면 그렇게 효과적이지 않았던 것 같다. 한 달간 연습했던 루틴처럼 나는 영어 표현이 그다지 좋지 못하기에 긴 지문이 나오면 정확히 기억하는데 그나마 장점이 있을거라 믿었지만 시험 때는 대략 긴 2문장 ~ 짧은 3문장 정도로만 나왔다. 더구나 변명을 좀 해보자면 나는 나름 시험장에 일찍 도착했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앞전에 사람들이 많이 와 있어서 멍하게 1시간 정도를 기다리기만 했다. 준비도 대충했었다. 단어장 출력하기도 귀찮아서 아이패드에 넣어갔는데, 입구에서 모든 전자기기를 뺏기고 시계도 안가져가서 시간 확인도 안되는 상태에서 멍하게 1시간을 대기하려니 머리가 좀 굳었던 것 같다. 한-영, 영-한 통역 모두 군사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그나마 키워드를 좀 기억해서 완전히 망치진 않았다.

시험일로부터 10일 정도 후에 결과가 나왔다. 합격이었다. 주변에선 축하를 받았지만 막상 두 달 후 입대를 생각하니 머리가 하얘지기 시작했다. 시험이 지연되지 않았으면 한 달 전에 미리 결과를 알았던가 탈락 시 마찬가지로 11월에 입대하는 기술병을 지원할 계획이었기 때문에 입대 전에 무엇을 할지는 미리부터 생각해오긴 했다. 그 중 한가지는 다른 데서 인턴을 또 해보자는 계획이었다. 7월 말 즈음 핀테크 스타트업에 지원해서 Zoom으로 면접을 보고 8월 초에 합격 통지를 받았다. 이전에 해본 내 첫 인턴은 꽤 규모가 있던 회사고 하던 일들이 대부분 수동적으로 보조해주는 역할이라 몸과 마음이 힘들더라도 더 주도적으로 일하고 배울 수 있는 스타트업을 열망했었다. 지금 글을 쓰면서 돌이켜봐도 그 때 회사를 갔어야 되나 아님 거절했어야 되나 확신이 차지 않는다. 결론적으로는 거절했는데, 인턴 Job description에는 2개월 근무(3개월도 가능)로 쓰여 있었지만 담당자분이 무조건 3개월 이상 근무해야 된다고 했던게 컸다. 정확한 날짜가 어찌 됐든 10월 혹은 11월 입대가 예정돼 있었기에 괜히 일하다가 회사에 폐를 끼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스타트업 인턴은 앞전에 하던 인턴과 스타일이 달라서 재밌을 거라고 기대했을 뿐 아니라 제대 후에 내가 해보고 싶은게 스타트업 창업이기 때문에 아쉬운 마음이 크다.

I feel so close to you(=입대) right now. … And there’s no stopping us right now..

입대와 제대가 답답한 굴레를 끊어주길 바라면서
October 28th, 2021

누구나 한번씩은 인생의 목표에 대해 깊게 사색할 때가 있을 것이다. 평소에 무심코 지나쳤던 길거리가 하루는 기분에 따라 달라보이는 것처럼, 학업이나 생업, 남이 억지로 시킨 일이나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을 반복하다가 문득 자신을 되돌아본다. 대게는 한 순간 그런 생각에 집중하다가도, 현실로의 스위치가 달깍하면 까맣게 잊어버리는 것 같다. 지난 5년간의 세월과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나는 그러한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느낀다.

고등학생 때였나. 블로그를 시작한 이후로 내가 과거의 나 자신에게 느끼는 감정은 항상 부끄러움이었다. 사실은 후회스러운 대학 선택이었고, 학과 선택이었고, 이미 지나가버린 대학 생활이었다. 돌이켜보면 고등학교 자퇴라는 파격적이고 만족스러운 결정을 한 이래로 이렇다 할 뿌듯함이 없었다. 지금처럼 가끔씩 블로그에 접속해 내 생각에 대한 글을 쓰듯이, 특정 주기로 반복되던 나 자신에 대한 성찰이 몇 날 며칠간 마음에 불을 지피긴 했었다. 싱가폴에서 외식업을 창업해보려고 했었고, 베트남 친구랑 의류 브랜드를 만드려고도 했었고, 중국에서 한국으로 물건을 띄어다 파려고도 했었고, 무작정 혼자서 빵쪼가리 먹으며 유럽여행을 하기도 했다.

한때였다. 어머니께서는 지금이나, 옛날 내가 장난기와 진지함이 뒤섞인 말투로 싱가폴에 남아서 창업해보겠다던 때나 일관된 말씀을 하셨다. 뭐라도 좋으니 시작하고 실패를 경험해 보라고. 아니, 실패를 위해 시작하라고 했다. 나 또한 그 때나 지금이나 어머니의 말씀에 무조건 공감한다. 머리 속으로 수없이 되뇌었다. 뭐든지 제대로 한 번 해보자고. 시도해보자고.

나의 부끄러움은 여기서 기인한다. 나는 제대로 못해봤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 머리 속으로는 행동하기 위한 장작을 쌓아놓고, 마음 속에서 불을 지피기 위해 부싯돌을 틱틱거렸지만 정작 불이 환하게 타본 적이 없었다. 따라서 나는 부끄러웠고 점차 패배주의의 늪으로 빠져들어가는 것만 같다. 나도 ‘나 때는 말이야..’의 높으신 분들이 매번 말씀하시는 젊은이의 패기와 끈기가 부족한 것일까? 아니면, 자유롭게 내가 하고 싶은 아이디어로 창업해보는게 사실은 내 적성에 안맞는 것일까? 또 아니면, 사실은 안정적인 직장이나 물질적인 성공만이 정답인 건가? 스무 살 이전에도 안들던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정체성이 흔들리는 기분이다.

하루 이틀 생각하면서 정답을 얻어낼 수 있는 질문은 아닌 것 같다. 한 가지 확신이 있다면 부끄러운 감정은 좋지 않다는 것이다. 최근에 MBTI에 대한 글을 봤다. 첫번째 글자인 내향성(Introvert) 또는 외향성(Extrovert)의 경우 ‘나는 빨강, 너는 파랑’과 같은 이분법적인 해석이 아니라 ‘외향성의 정도’에 따라 나뉜다고. ‘나는 아주 진한 빨강, 너는 옅은 빨강’ 정도로 해석해야 맞겠다. 즉, 내향적인 사람은 외향성의 정도가 낮은 사람이다. 외향성의 정도가 낮다는건 단순히 사회적 관계에 약할 뿐만 아니라 개인이 자기 자신에게 느끼는 행복도의 정도도 낮아진다. 외향적인 사람들이 길가다가 500원을 줍게 되는 것에 소소하지만 뜻밖의 행복(소뜻행?..)을 느낀다면, 나같이 내향성이 짙은 사람은 ‘오..’ 정도만 내뱉고는 넘어간다. 부끄러움도 비슷한 맥락일것 같다. 근 몇년간의 내가,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때때로 자신이 부끄러운 사람은 자신에 대한 확신의 정도가 낮은 사람이다. 남들의 기준이나 사회적인 흐름이 가져다주는 우유부단함과 불확실이 아니라, 줏대 있게 내 결정은 내가 내리는 확실함이 필요하다. 여러분이 보기에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자기계발서의 정론이라면 나는 상당히 무안하다. 왜, 사람들이 항상 ‘후회해봤자 쓸 데 없어’라고 생각은 하지만은 언제나 저지르고 후회하는 것처럼, 나도 분명 내 머릿속에 무엇을 해야하고 어떨 때 하지말아야 할 행동강령은 있었는데 매번 실천으로 옮기지는 않았던것 같다. 정말로. 고등학교를 자퇴하겠다는 결정, 싱가폴 사립대학을 가겠다는 결정, 영국의 일반 대학에 지원하겠다는 결정, 그리고 영국 대학을 1학년부터 다시 다닐지 아니면 그대로 싱가폴 분교에서 학업을 지속할지에 대한 결정. 하물며 전여자친구를 사귈 때의 결정도, 최종적으로 나의 확신이 아니라 주변의 영향에 휩쓸렸던 것 같다(이쯤되면 지금까지 내가 병X이었던게 맞는 것 같다).

그래서 입대를 한 달 앞둔 스물 두살의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이미 군대가기 전 몇달동안의 할 것들이나 군대가서 공부할 것, 제대 후의 할 것들은 계획했으나 ‘정신적’인 무언가가 필요했다. 지금까지의 폐단을 살펴보니 결론은 위에서 언급한 ‘확신’에서 이어지는 자신감에 대한 스스로의 공부가 필요한 것 같다. 어릴 때부터 나는 나 자신에게 너무 관대했다. 이를 테면 이런 식이다. 수업시간에 동급생이 수학 문제를 틀려 수줍게 있으면 나는 ‘왜 저렇게 자신감이 없어’하고, 반대로 내가 문제를 틀리면 ‘아, 사람이 이정도는 틀릴 수도 있지’였다(그냥 이기적인 건가?..). 반대로 남들에겐 관대했어도 나 자신한테는 한없이 까다로웠어야 했다. 그런 잘못된 자신감, 즉 ‘자존심’ 이라던지 혹은 허영심이 나 자신에 대한 답답함의 굴레를 끊지 못하는 폐단이 아니었을까 싶다. 알량한 자존심을 버리고 내가 서있는 위치 – 중산층이며, 딱히 집안에 사짜 들어가는 친척은 없으면서, 공부를 잘하지는 않는데 딱히 노력형도 아닌?.. 머리를 가지고 있고,가끔씩 갑작스럽게 타올랐다가 빠르게 지는 열정을 가지고 있는 나 자신을 더 공부할 필요가 있다. 키가 작은데 팔다리는 비정상적으로 길 수 없는 것처럼, 내가 처한 상황과 가진 것들에서 그 이상을 욕망하는 허영심은 버리되 그 이하에서 확신을 갖고 살아가며 최대치를 꿈꿔야 한다. 그러면 언젠가 기회가 오겠지.


마무리하면서…

대학 마지막 과제의 점수는 사실 기대보다도 한참 밑이었다. 보고서 형태다 보니 제대로 된 피드백이라도 주지 않는다는게 아쉽다면 아쉽긴 하다. 위에서 한 달 전에 썼던 목표 점수 70점에 미치지는 못했지만 학교에서 감사하게도?.. 반올림을 해주는지 등급은 first class로 졸업할 수 있게 되었다. 어찌 보면 5년 전 고등학교 자퇴의 결실이 맺어지는 순간이라 굉장히 감정적이게 반응할법 하면서도, 한 달 뒤의 군입대와 더불어 대학 졸업이라는 기쁨 뒤에 숨겨진 뜻(=이제부터 사회생활 시작임)에 더욱 압도당했다.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지만 무색무취의 대학 졸업장을 위해 달려온 순간들을 생각하면 씁쓰레하다.

다음 글은 군대 안에서 쓸 것 같다. 언제나 그랬지만 이번 글은 특히 자기성찰적이고 너무 솔직히 감정을 드러낸 기분이라 군대에서 내가 쓴 글을 되돌아볼 때 얼마나 오그라들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를 반면교사 삼아 군인 신분으로 일하면서도 위에 열거한 개인적인 목표들을 달성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루 밤낮에 변한다고 기대하지 않는다. 쌓아둔 장작에 제대로 불을 지필 수 있을 때까지 꾸준히 노력해보겠다.

지금까지는 근 5년에 대한 회한을 담았으니, 이 블로그의 주인의 지난 5년을 짧게 살펴봅시다. 막 군대가기 전이라 괜히 우울해져서 사진첩을 뒤져본건 절대 아니..다. 몇몇 여행은 따로 사진들을 모아서 블로그에 올리려고 했는데 정리하는게 귀찮아서 안올린 것들도 있다. 그런 김에, 그리고 대략 2년은 있어야 자유의 몸이 되는 김에 사진들을 찾아 왔다. 단 10장의 사진으로 지난 5년을 되돌아봅시다.

마지막은 살짝 코믹하게 써봤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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